감사한 육아
최근 새로운 모임에 가게 되었다. 무릇 새로운 모임의 시작은 돌아가면서 하는 자기소개가 필수이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연구원이라고 소개했고, 어떤 사람은 직장인이라고 소개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역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에 직업은 빠질 수 없는 항목인 것 같았다. 모두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사람들에게 정성껏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소개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어른의 소개란 그런 것일까.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과 나이는 이렇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주부입니다.”
“네?”
어떤 형님께서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으셨다.
“주부요. 가정 주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인 남성이, 그것도 30대가 주부를 하고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나 보다. 주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므로, 추가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줄 내용이 마땅치 않았다. 공기가 약간 얼어붙었다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나는 무언가 더 말해야할 것 같아서 덧붙였다. 16개월이 된 딸 한 명이 있고, 지금 딸을 돌보고 있으며 아내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다행히 너무 성의 없는 답변까지는 안되었던 것 같아 다음으로 턴을 넘겼다.
소개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니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 타임이 되었다. 조금 놀랐던 것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궁금함을 많이 표현한 것이다. 주부 일이랄게, 딱히 모르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밥 해주고, 치우고, 케어하는 것들은 잘 맞아요?”
두 자녀를 키우고 있던 한 여성께서 물어오셨다. 나는 조금 고민했다. 힘들긴 힘든데…힘들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내 감정적 상태를 답해야하나. 힘들다고 말하면 너무 뻔한 답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힘들다고만 하기에는 내가 느끼는 것이 온전히 설명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나의 답변은 간단한 한 마디였다.
“네, 행복하게 하고 있어요.”
“나는 아이 키울 때 너무 힘들었거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잘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다행이다라는 말에 문득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괴로울 수도 있는 육아가, 주부의 일이 견딜만 했기 때문이다. 아니, 견딜만 하다고 하기 보다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이다.
“당신이 아이를 잘 돌봐줘서 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며칠 전 아내가 내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하루의 대부분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직장인으로써, 아내는 내심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을지, 남편은 생활을 잘 해나고 있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어쩌면 집에 남아있는 남편이 미덥지 못할수도 있고, 그렇다면 직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마음 편할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사하게도 아내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는 받고 있구나 싶었다. 아내에게도 이 상황이 감사하지 않았을까.
사실 자기소개 같은 것, 내 직업을 남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나에겐.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부담도 있다. 남자가 능력이 없어가지고. 이런 말이 공기 중에 전파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러나.
자기소개를 해보고 나니 알겠다. 아, 나 육아하는 거 좋아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오늘은 그것에 만족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PS : 그림은 내가 그린 김 먹는 김 OO이다. 미안, 아가야. 다음엔 더 잘 그려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