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씨 May 19. 2023

잘 키우는 것이란

아버지의 길에 대해 생각하다

잘 키우는 것이란


 나의 아버지는 사장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의류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그게 자신을 위해서였든 가족들을 위해서였든, 아무튼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자본금이 없었다는 것에 있었다. 자본금이 없으면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노동을 했어야 했지만, 그는 조급했던 것 같다. 무엇에 쫓기고 있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그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다. 대출. 그마저도 자신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는지 엄마의 이름으로 보증을 세웠던 듯하다. 개인의 탓이었던, 사회적 환경 탓이었던, 아니면 순전히 운이 없었던지 그는 사업에 실패했다. 그의 사업 실패는 엄마의 신용도 동반 추락했다는 것을 뜻했다.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이 겪었던 고생과 괴로움을 여기서 적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내게는 어떤 한 가지 생각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경제적 무능은 가족의 삶을 괴롭게 하고 부모의 역할을 하기 어렵도록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여전히 내 중심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지, 경제적으로 힘이 별로 없는, 그러니까 돈을 벌 수 있는 경제력이 약하고 왜소한 나는 한 껏 주눅이 들어있다.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내가 겼은 비슷한 괴로움을 건네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다. “아빠, 우리는 왜 그걸 살 수 없어요?”라고 어느 정도 자란 아이가 물을 때, “다른 애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왜 나는 못 가져요?”라고 물을 때, 나의 대답으로 아이는 실망감과 혹은 수치심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아주 잘 안다. 경제력이 탄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해서 괴로움과 슬픔이 없을 수 없고, 가족에 대한 상처를 가질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자란다는 보장은 없음을. 그때 그 시절 잘 못된 선택을 하고선 반성할 줄 모르고 가족을 괴롭혔던 그때의 아버지가 생각난 날, 문득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란 무얼까 생각해 본다. 


 착각하기 쉽지만, 당시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가정들이 모두 가정파탄으로 내몰렸던 것은 아니었다. 배고프고 남루할 수 있어도 서로를 향한 애정과 신뢰, 정직과 인내, 헌신과 희생으로, 그러한 미덕들을 힘입어 가족이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 서로의 소중함을 만끽했던 가정들도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부모에게 서로 감사해하는 그런 가정들도 있었다. 같은 경제적 위기 속에서 우리 집에 없었던 그것들로 인해 나는 가정의 파탄을 목도한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단지 돈이 없어서라고 가정 파탄의 이유를 대려 한다면, 그건 다른 부분에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고 내놓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 감추고 변명하려는 시도가 될 뿐이다. 


 아내를 위해, 아이를 위해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있다면, 자식을 잘 자라게 하려면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다른 무언가가 더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것이다. 답은 무얼까. 앞으로 나의 가족을 지켜내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답을 찾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치 제대로 된 길이 있다는 듯이 써진 제목을 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알아차린 옳은 길로 향하는 힌트를 여기 짤막하게 나눠볼 수 있겠다.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아이의 눈과, 입이 미소를 띠고 있다.  분위기에서 기쁨이 묻어난다. 나는 거기서 아이가 행복을 경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


 아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언제까지 함께 있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함께 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아이가 부모와 지낸 시간을 행복으로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일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 더 긴 인생을 살아갈 아이의 평생을 부모가 완전히 책임질 수는 없다.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나야 하는 아이에게 우리 부모가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받았던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 있으면 그들은 그들의 고난과 시련을 극복할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나를 떠올릴 때면 행복했고 사랑받았음을 기억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주기 위해서, 자녀가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삶의 과정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돈’만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돈’이 차지하는 부분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안기를. 그래서 그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 아내와 자녀를 충분히, 제대로 사랑해 가기를. 바라본다.




이전 26화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