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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Jul 24. 2023

너의 것은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은 나의 것이다.

아이와 나는 타인이다.

너의 것은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은 나의 것이다.


육아 휴직 중에 육아 외에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침이 되면 일찍 일어난 아이와 놀아주고 케어하다가 어린이집에 보낸다. 오후 4시에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니 그때까지는 여유가 있다. 집안일을 좀 하고 밥을 차려먹으면, 이제 휴식 시간이다. 여유 시간을 이용하면 분명 무언가 할 수 있을 텐데 시키는 사람도, 요구하는 사람도 없으니 에너지를 쓸 의욕이 잘 나지 않는다. 의욕이 난다 한들 혼자서 얼마나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을 텐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뭉그적 거리면 벌써 아이 하원 시간이 된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흘려보내다 보니 일상이 단순한 몇 가지로 정리된다.


   

아이 밥 먹이기


집안일하기


아이 등, 하원시키기


놀아주기


병원 데려가기



이렇게 생활이 단순해지니 좋은 점도 있다.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멀어진다


여러 인간관계들이 단조로워진다


돌발적인 일이 줄어들어 불안이 덜 하다




 얼마 전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람들은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 안에 감사한 일들도, 인상 깊은 일들도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앞으론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집안일을 하고 있어요. 힘들기도 한데, 보람도 있답니다. 앞으로는… 아이를 잘 키워야지요. 이렇게 말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삶을 나누는 자리에 육아 이외에 내놓을 내 삶이 없는 것 같았다. 


“육아하고 집안일하는 것도 삶에서 중요한 부분 아니야?”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도 맞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삶을 채우고 있자니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 삶의 목적도, 이루고자 하는 바도, 극복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아이를 잘 키우면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 아닌가.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자.”


육아만이 삶을 이루고 있다 보니,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나는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많은 육아인들이 아이에게서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결국 아이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될 때, 부모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부정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부모에게 통제당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는 아이가 아닌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아이의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이 삶의 의미가 공고히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흔들리지 않는 부모 밑에서 넘어져도 보고 다시 웃으며 일어날 수도 있다.


육아 휴직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육아 휴직이 끝나면 아이를 케어할 조건과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 퇴사를 하고 내가 집에서 계속 생활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이라 고민이 더 되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무언가, 해야 할 무언가, 이루어내야 하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직장을 다니지 않을 예정이지만 다시 삶을 복잡하게, 다양한 관계 안에 던져놓고, 돌발상황을 기대해 봐야겠다. 그렇게 다시 내 삶을 살도록 해보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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