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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May 24. 2023

너의 죽음을 모른 채하며

아가야 미안하다

너의 죽음을 모른 채하며


요즘 가장 큰 걱정은 아이의 중이염이다. 벌써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중이염은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의사 선생님은 오래 지속되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해 나와 아내의 마음은 심란한 지경까지 되었다. 요즘은 아이 건강이 가장 최우선이므로 중이염이 완치되기 전까지 아이 어린이집을 쉬게 하고 종일 나와 함께 집에서 생활 중이다. 아이 등원 후 보장된 나만의 시간이란 달콤함을 경험한 터라 쉽지만은 않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쯤이야 해낼 수 있다.


다행히 날씨가 따뜻한, 오히려 덥기까지 한 요즘이라 아이와 한 번씩 산책을 나올 수 있었다. 아직 추운 3월이었다면 정말 꼼짝없이 집에만 있었어야 할 것이었다. 거기다 시기가 좋아 길가에는 많은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어 볼거리도 많았다. 나는 아이와 함께 햇볕을 쬐며 창창한 하늘 아래 길을 따라 걸었다. 아이는 잘 관리되어 심긴 꽃들도 좋아했지만 들꽃들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여기 핀 꽃, 저기 핀 꽃을 쫓아다니다가 버스정류장을 지나치는데 미약한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힘이 없으면서도 구슬픈 소리였다. 신경이 쓰여 여기저기 쳐다보는데, 정류장 기둥 옆에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아기 참새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아기새가 있다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와 나는 마치 진귀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아기새를 바라봤다.

“아기새가 엄마새를 찾고 있나 보다. 아기새와 엄마새가 어서 만나면 좋겠다.”

아이와 나는 그 작은 아기새가 애타게 엄마를 찾는 것 같은 장면에 빠져들었다. 약간 과장해서 아기 새의 부리 속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때였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려는 한 노인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노인은 내가 말할 틈도 없이 아기새 곁으로 다가왔고, 그 조심성 없는 발은 아기새를 기어코 밟아버렸다. 눈앞에서 밟혀 죽는 아기새. 끔찍했다. 갑자기 내 정신이 어디선가 내쳐진 칼로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어... 어... 어!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내 소리에 뭔가 낌새를 차렸는지 노인은 발아래를 봤고, 좀 전까지 경이로운 생명체였던 것을 알아차렸는지 내가 밟은 거예요 하고 내게 물었다.


”네! 맞아요! 밟았어요! “


정신을 차린 나는 마치 누군가에게 고소를 하듯 강력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그냥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나중에 조금 멀어진 노인을 다시 봤을 때, 노인은 자기 신발 바닥을 길바닥에 닦는 듯한 시늉을 했다.


뭔가 내 마음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다음 든 생각으로 인해 나는 나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아이도 나와 같이 아기새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그 장소로부터 멀어졌다. 아이가 아기새의 사체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했다. 다 큰 나도 충격을 받았는데, 아이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 당도해서 아이게 물었다.


”혹시, 아기새를 보고 있었니? 아기새가 다치는 것을 봤니? “


”응 “


아이는 그 장면을 본듯했다. 나는 혹여 아이가 트라우마라도 생기면 어쩌나, 아이 마음이 다쳤으면 어쩌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 어떻게 하지 같은 걱정거리들이 떠올랐다. 그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었다.


”아빠는 아기새가 너무 불쌍해. 그리고 너무 슬퍼. 아기새를 다치게 한 사람은 정말 잘못했어. 그리고 아기새와 엄마새에게 미안해. “


아직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말을 못 하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내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말을 거진 알아듣는 아이는 무언가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그때의 기억을 기록하면서,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한 생명의 죽음 앞에서 고작 나는 내 아이의 마음만을 신경 쓸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그냥 빠져나온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세상에 태어나 허무하게 죽어버린 생명에 대해 내가 약간이라도 애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불쌍하게 여겼다면, 나는 그 사체를 어딘가에 묻어줘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또 밟혀서 형체도 사체도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나란 인간이었다.


이기적인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새들의 죽음을 모른 채 할 것이다. 내일의 나는 또 다른 생명의 죽음을 모른 채 할 것이다. 그저 나와 내 식구들의 안위만을 중요히 여길 것이다. 결국 자기 신발 밑창이 더러워진 것이 신경 쓰여 바닥에 닦아낸 그 노인과 나는 다를 바 없는 종인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상이란... 작은 지저귐 따위 들리지도 않는, 듣지도 않는 곳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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