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는 타인이다.
너의 것은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은 나의 것이다.
육아 휴직 중에 육아 외에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침이 되면 일찍 일어난 아이와 놀아주고 케어하다가 어린이집에 보낸다. 오후 4시에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니 그때까지는 여유가 있다. 집안일을 좀 하고 밥을 차려먹으면, 이제 휴식 시간이다. 여유 시간을 이용하면 분명 무언가 할 수 있을 텐데 시키는 사람도, 요구하는 사람도 없으니 에너지를 쓸 의욕이 잘 나지 않는다. 의욕이 난다 한들 혼자서 얼마나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을 텐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뭉그적 거리면 벌써 아이 하원 시간이 된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흘려보내다 보니 일상이 단순한 몇 가지로 정리된다.
아이 밥 먹이기
집안일하기
아이 등, 하원시키기
놀아주기
병원 데려가기
이렇게 생활이 단순해지니 좋은 점도 있다.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멀어진다
여러 인간관계들이 단조로워진다
돌발적인 일이 줄어들어 불안이 덜 하다
얼마 전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람들은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 안에 감사한 일들도, 인상 깊은 일들도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앞으론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집안일을 하고 있어요. 힘들기도 한데, 보람도 있답니다. 앞으로는… 아이를 잘 키워야지요. 이렇게 말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삶을 나누는 자리에 육아 이외에 내놓을 내 삶이 없는 것 같았다.
“육아하고 집안일하는 것도 삶에서 중요한 부분 아니야?”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도 맞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삶을 채우고 있자니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 삶의 목적도, 이루고자 하는 바도, 극복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아이를 잘 키우면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 아닌가.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자.”
육아만이 삶을 이루고 있다 보니,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나는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많은 육아인들이 아이에게서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결국 아이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될 때, 부모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부정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부모에게 통제당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는 아이가 아닌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아이의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이 삶의 의미가 공고히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흔들리지 않는 부모 밑에서 넘어져도 보고 다시 웃으며 일어날 수도 있다.
육아 휴직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육아 휴직이 끝나면 아이를 케어할 조건과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 퇴사를 하고 내가 집에서 계속 생활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이라 고민이 더 되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무언가, 해야 할 무언가, 이루어내야 하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직장을 다니지 않을 예정이지만 다시 삶을 복잡하게, 다양한 관계 안에 던져놓고, 돌발상황을 기대해 봐야겠다. 그렇게 다시 내 삶을 살도록 해보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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