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to do list# 지금의 활력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제목만 보고 백인 남성이 쓴 미국식 저스트두잇! 을 상상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그 심심 말고 진짜 심심한 사과임 별로 사과할 일은 아니지않나용 아님말고용)
무언가를 하기에 좋은 때란 없었다. 신중한 선택은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도전의 의미보다는 일상의 의미에 가깝다. 난 늘 무언가를 이룬 후에야 잘 지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루기 위해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좋아하는 일도 해보고 도전도 조금씩 하고 운동도 하고 식단도 한다. 돈공부도 한다. 해봤자 지출 줄이기 정도긴 한데..
00만 하면 행복해질 거야. 그전까지는 준비단계일뿐이다.
한국엔 '00만 하면'이라고 어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다들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승진만 하면 결혼만 하면.. 을 중얼거린다. 나도 당연히 한국 입시에 찌들었던 고등학생으로서 대학만 가면 다 즐거울 줄 알았다. 그게 내 인생 20대 우울증의 시작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좋은 곳을 가야 더 좋은 대우와 삶이 기다리는 건 맞다. 나도 그러기 위해 퇴사를 했고. 그런데 그곳을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세뇌는 사람을 조금 멍청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이 진상짓을 하면서도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것이다. 누구세요? 님 스펙이랑 인성 쓰레기인 거랑 뭔 상관인데요?
이건 반대로 생각해도 환장할만한 일이다. 그걸 이루기 전까지는 인간취급을 못 받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예전 글을 보면 '취준생도 재미있게 살아'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이다.
https://brunch.co.kr/@ruddb1155/472
지금 보면 굉장히 웃긴 글이다. 취준생이라서 나는 괴롭고 늘 열등감에 휩싸여야 하고 즐거워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전까지는 이 악물고 노력하고 괴로워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런데 오랜만에 연락한 할머니가 나더러 재밌게 살라고 했다. 그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 나 백수인데요. 이 나이 되도록 부모님 연금 뜯어먹는 백수인데요. 그런데 제가 즐거워도 될까요?
20대 중후반에서 여러 번 퇴사하고 다시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결심한 게 있다. 첫 취준때와는 다르게 하자. 활력을 포기하지 말자고.
모든 것들을 함께 챙겨가면서 하고 싶었다. 무조건 하루 24시간을 자소서와 공부에 쓰기보다는 글도 아침에 쓰고 운동하면서 급격히 찐 살도 빼고 싶었다. 취업준비와 공부는 내 노력만큼 안 나올 확률이 있지만 운동이나 식단, 내가 쓴 글의 누적은 100% 내 의지로 가능했다. 그런 건 귀하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방청소를 미루지도 않았다.
지금도 내 삶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뭔가를 이뤄야만 할 수 있다는 건 핑계다. 나도 취업하면 살 빼고 운동하고 식단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개뿔이다. 1년 근무기간 동안 더 뒹굴거렸다.
필요한 건 지금 취해라. 머리가 아프면 산책을 하고, 회사 일이 바쁘더라도 올해 보고 싶은 사람 한 번은 봐라.
곧 추석이다. 백수에게 얼마나 괴로운 게 명절인지 다들 아시겠지. 나는 잘 다니던 회사까지 때려치웠으니 얼마나 비수가 꽂힐까. 하지만 취업하고 나서 내가 보고 싶은 몇몇 사람들을 볼 순 없었다. 취업해야만 그들을 볼 면목이 서는 것도 아니다 아니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냥 내 가족들인데 뭐 하러 내가 떳떳하게 가야 하나? 내가 취업 못하면 지들이 죽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가서 얼굴 들이밀고 보고 오련다.
백수니까 용돈 좀 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