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TO DO LIST # 내 소듕한 하루들
가끔 우리는 1분 동안 일어난 작은 이벤트로 하루종일 기분을 망치곤 한다. 심지어 주변에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풀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누군가랑 부딪혀서 기분이 나빴다고 약속 내내 얼굴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것처럼. 그건 사실 1초도 안 되었을 일일 텐데 말이다. 하루는 24시간이고.
나는 스트레스에 엄청 약하다. 주변인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네가?’라고 한다. 아마 큰 일에 대해서는 내성이 생겨서 겉으로는 티가 안 나는 듯하다. 아니면 내가 어리고 서툴렀던 예전에 비해 단단해졌을지도 모른다.
음, 큰 일에 더 담담해지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큰 일은 보통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일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큰 일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멘붕의 사건들은 잘하면 내가 대비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모든 것을 망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최근 나는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영어 회화 점수가 더럽게 안 나오는 거다. 오픽이니 토스니.. 3년 전에 나는 3일 공부하고 바로 제일 높은 등급을 받았었다. 그래서 1,2년 동안 회사에서 썩으면서 굳어버린 뇌와 이제 갓 졸업한 똑똑이들이 내 경쟁자라는 것과 그 3년 동안 시험의 수준이 높아져버린 그 모든 요소를 무시해 버리고 시험을 쳤다. 몇 번이나 쳤지만 점수는 그대로고 이제 웬만한 기업들은 접수가 마감되었다.
그날 친구를 불러서 닭발에 소주를 부수고 네발로 기어 와서 한참 한탄을 했다. 몇 달 동안 그냥 한번 시험 치고 바로 학원이나 인강 끊을걸.. 저 점수로 어떻게 지원하냐.. 인문계 직무라서 다들 영어 점수 빵빵할 텐데. 그냥 지원하지 말고 점수 먼저 올려?
지금 생각하니 논리의 번지점프지만 그땐 정말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그 주간은 기분도 내내 나빠서 효율도 안 나오고 자소서도 정말 안 쓰이고 충동적으로 놀거나 뭘 먹고 그랬다. 작은 티끌로 모든 일까지 기분 나빠한 케이스다.
이럴 때는 나는 우리 엄마를 종종 생각한다. 나는 전환을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아마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 좋은 일은 안 좋은 일뿐, 그걸로 이다음에 오는 사람, 일, 상황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한다. 어딘가에서 본 글인데 ‘바늘에 찔렸다면 그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엄마의 삶의 신조가 딱 이 말이다.
오늘따라 운수가 안 풀리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보통 착각일 때가 많다. 그 일들은 서로 관계없이 그냥 일어난 일들이다. 그냥 앞에 조금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서 내가 이후에 오는 모든 일들에 촉각을 세우니까 더 그렇게 보일 뿐이다.
라고 부처처럼 이야기했지만, 나 또한 몇 번 카페에서 자리 없어서 헤매고 나기 기분이 별로다. 하지만 꽤 괜찮은 동네 카페에 우연히 들어가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은 걸로 기분이 다시 괜찮아졌다. 엄마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바늘에 찔린 만큼에 괴로워하고 다시 즐거운 하루를 시작하는 당신의 딸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