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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y 01. 2024

준비기간은 없는 ‘삶’으로 치는 한국에서 살기

그렇다면 한국에서 제대로 인간으로 사는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나이가 든 (이라고 해 봤자 서른 안 된) 나 같은 취준생들은 그 시간을 증명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쉐어하우스를 살고 대학교를 다니고 회사도 다녀보면서 참으로 다양한 환경의 내 또래들을 만났다. 그중 기성세대들이 그놈의 엠지거리고 snl에서 보면서 낄낄댈만한 아이들은 적었다.(있긴 했다. 나도 거기서 자유롭진 못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준/고시준비를 하거나 집안 사정 혹은 개인 건강사정으로 억지로 중단된 경우도 있었다. n수(대학교를 가기 위해 재수 이상의 수능을 치는 것)로 졸업이 늦어지는 게 가장 소프트한 경우일 정도다.


게 중 나처럼 취직을 여러 번 했으나 전환 실패, 직장 내 괴롭힘, 직무 정말 안 맞음, 스타트업 대표가 나가라고 함 등등으로 원치 않게 다시 주니어도 신입도 아닌 애매한 상황으로 구직시작에 내몰린 사람들도 흔했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다. 한국은, 그리고 그 안의 나조차도 이 취업'준비' 기간은 내 인생이라고 안 친다는 것을. 그저 인생 중 괴롭고 가난하고 힘든 시기로 치는 게 아니라 아예 있으면 수치스러우니 없는 것으로 치부해 왔음을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단계별로 살지 않으면 온갖 비난을 받는 곳. 수능 준비, 졸업 준비, 취업 준비, 집 살 준비, 결혼 준비, 출산 육아 준비, 노후 준비.... 전부 준비만 하다가 가는 인생이고 안 그런 인생이 어딨겠냐만은. 문제는 그 '준비' 기간은 없는 기간인 셈 치고 그 준비 이후 무언가를 얻은 이후인 몇 년만 인생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나도 내 인생을 남들도 자기 인생과 내 인생을 그렇게 해준다.

경기가 힘들어지고 인생이란 내 맘대로 되지 않기에 준비 기간은 어쩔 수 없이 길어지기도 하고 '획득' 이후의 기간이 갑자기 '준비' 기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치면 한국에서 인간의 삶으로 인정되는 기간은 10년이 채 안되지 않을까. 뭐, 구직시장에서야 나의 공백기(취준 했는데 잘 안 되었고 알바하고 있어요, 대충 이런 이유로 이직하려고 했습니다. 등)를 이야기해 줘야겠지만 그조차도 서류 합격률이 나이 때문인지 극악이 되어서 기회조차 없다.


결국 나는 이 준비 기간 또한 내 인생이라고 인정해 주고 잘 살아가기로 했다. 행복한 일상이 모여서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바라기로 말이다. 쓸데없이 어떤 고생에 의미가 있다거나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그럴 에너지는 없다. 굳이 의미를 둔다면 전공과 다른 분야임에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꽤 빨리 찾은 것(취직이 잘 안 되는 분야라 해도 그쪽 경력이 있음)... 정도일까.


어차피 알바를 하지 않는 평일 오전-오후-저녁은 모두 자소서나 면접준비에 쓰고 있으니 그 외의 시간에는 나름 일상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돈 여유가 있다면 친구도 종종 보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거나 운동을 간다. 저녁도 건강한 걸 먹어서 살도 많이 뺐다!(운동도 습관이 되었다.) 브런치북도 있고 인스타툰도 있고 방 청소도 꾸준히 하며 나가기 전에 옷과 머리를 잘 단정히 매만진다. 알바를 가면 짜증 나는 순간들은 있지만 음료를 워낙 좋아하는 나이기에 음료 빠르게 만들면서 머리 비우기도 좋다.


물론 이러다가 갑자기 다시 서류 탈락 소식을 들으면 답답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갑갑해질 뿐이다. 도움 받을만한 곳에선 다 받았는데 문제를 모르겠으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그러면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그냥 나의 일부겠지. 나를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이 기간도 인생이라고 쳐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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