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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Nov 07. 2024

프롤로그-죽음을 하루씩 미루다 보니 살고 있다.

별 거 아닌 포인트들로 내일을 맞이하는 방법.

이전에 스터디를 함께 하던 분에게서 책 선물을 받았다.


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


이 책의 시작은 한 할머니가 북토크에서 이슬아 작가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이다. 이슬아 작가님의 책이 좋았고, 그 북토크를 보려고 익숙하지 않은 버스를 두 개나 갈아타서 겨우겨우 왔다는 것이다. 그는 설레는 표정으로 말을 한다. "나, 작가님이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왜?

"그러면 얼마나 또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겠어요? 나는요, 작가님의 달라진 새로운 이야기들을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

작가는 웃는다. 웃으며 살짝 운다.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눈시울이 벌게진만한 일이니까.


나는 이 부분에서 작가에게 찾아온 그 할머니는 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신은 소중한 존재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궁금해하니까. 그게 사랑을 받는 대상의 의지와 상관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고 순애라면 순애겠지만.


난 죽는 것을 실패했다.

아마 죽기 전에 \<이렇게 죽는구먼..\>하고 독백할지도 모른다. 삶이 소중해져서 살기를 택한 게 아니라 몇 번이나 세상에 나가떨어지면서, 죽음을 시도하면서도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비참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달랬다. 이 브런치북의 이야기들은 그냥, 죽는 것을 실패한 사람이 죽음을 미룬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미뤘느냐, 어떻게 하루를 연장시킬 수 있었느냐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적으니 있어 보이는데, 내가 죽음을 미룬 방법 중 하나 예시를 들어보겠다. 그러면 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시시콜콜한지 알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겨우 몇 번이나 실패했던 취업에 성공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친구도 소속도 돈도 잃고 서른을 앞서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죽지 않았던 이유는

어드밴트 캘린더를 샀기 때문이다.


그래, 그 서양 어린이들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12월에 1일마다 초콜릿을 까먹으며 25일 크리스마스가 되길 기다리는 그런 거 말이다. 하루하루아침을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초콜릿이 나왔고(물론 종류는 3,4개로 제한되어 있음. 맛있긴 하더라) 그럼 또 다음날의 초콜릿을 생각하며 내일을 맞이할 용기를 내는 것이었다.


애매하게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딱히 지금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자립해야 했다. 하지만 세상, 사회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 또한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어딜 가나 미친놈을 한 번은 자극하여 잘 못 찍혔고, 실수가 많았으며, 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져서 쫓겨났다.


삶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을 조금씩 미뤄나갔다.

어드밴트 캘린더를 뽑거나

일이나 학업과 완전 무관한 어떤 취미를 갖거나

덕질을 하거나

드립 커피에 빠지기도 하고

미라클 모닝을 해보거나

밤을 새워서 책을 읽고

괜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안 입던 스타일의 옷을 입어보고

블루투스 스피커에 노래를 틀고 조용히 듣거나

사람을 떠나보내고

싸우면 안 되는 신입 쪼다면서 괜히 한번 싸워보고

예전과 다른 태도를(속으로) 취하면서


저런 새0가 어떻게 사회에서 사냐;; 할 때 그 새0를 맡고 있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괴로움을 미루거나 부딪히거나 다시 쓰러지면서 죽지 않고 하루를 버텨서 글을 쓰는지 말해보고 싶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오늘도 나와 맞지 않는 사회를 겪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또 이상한 회사에서 “왜 너만 문제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나는 이것들을 겪는 이유가 있는 걸까? 없겠지. 하지만 뒤에서 또 두근두근하면서 날 응원하는 무언가를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또 하루를 맞이해 본다.


그래서 두서없는 그 모든 글들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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