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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Nov 21. 2024

눈 뜨는게 끔찍한 사람을 위한 처방전

아침에 선물 숨겨두기

하루하루가 무서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

하루하루를 연장하듯이 살아야 한다.


다음날이 오는게 무섭다 못해 지긋지긋해진 나는 늘 자기 전에 빌었다. 이대로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죽음을 실패도 해보고, 본의 아니게 죽음의 문턱까지도 가봤다가, 여러 뉴스나 매체 혹은 지인들의 소식을 통해서 들은 '죽음'이 얼마나 어렵고 괴롭고 하염없이 쉽다가도 비참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 자듯이 세상에사 \<로그아웃\>되는 것마냥 죽음을 바라는 것은 굉장히 이기적인 마음이었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스무몇살의 내가 무얼 했냐.

당장의 내일이 소속이 있어서, 소속이 없어서, 돈이 있어서, 돈이 없어서, 가족이 있어서, 가족이 없어서, 살고 싶어서, 죽고 싶어서 괴로울 때는.


아침에 선물을 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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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약간의 인내와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배달음식도 2,3만원 하는데 이것도 2,3만원이면 2주에서 3주는 가니까. 한번만 음식을 참아보자. 예시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새로운 음식이나 선물 포장을 다음날 아침에 뜯기.

지금은 없어진, 한때 서강대역 근처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카페에서 드립백을 종종 사왔다. 커피에 자신있는 곳들은 드립백의 포장도 굉장히 고급스럽거나 뽀짝하거나, 정성이 있다. 그러면 그걸, 그 박스를 굳이. 레알. 굳이굳이.


다음날 아침에 뜯는다.


그러면 아무리 혐오스러운 나날이라도 내일 아침에 눈을 떠야한다. 아니, 그래도 궁금하잖아. 어떤 향이 있을지, 선물 안에 어떤 설명서가 있을지, 그럼 일어나서 빈 속에 커피를 먹을 순 없으니 빵이라도 입에 우겨넣게 된다.


두 번째, 아침마다 가는 곳을 정해놓는다. 좋아하는 장소 어디든 좋다. 나의 경우 예전에 경의선 숲길에 살았는데. 그 곳이 사람이 없을때 그렇게 길이 예쁘다. 게다가 주머니 사정이 좀 되면 유명한 식빵집에 가서 식빵을 사왔다.


오전 6시에 여는 곳인데, 직장인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 직장인이 되기 전에는 몰랐다. 그때 일어나서 빵 사면 늦는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삶에 진심이다.


세 번째, 아침밥을 챙겨먹는다. 정성스레.

\<챙겨먹는다\>에 있다. 물론 이건 정말 오전에 시간이 괜찮고, 그만큼 나의 상황이 어려울 때 써먹을 수 있었다. 대충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들을 위해서 아침밥에 스파게티 면을 삶았다. 인터넷에서 본 새로운 간단한 요리법을 기억해낸다. 자기 전에 간단한 요리법 영상을 본다. 그러면 생각하게 된다.


내일 아침에 해봐야지.

드립커피랑 마늘빵은 잘 어울리겠지?

집에 버터 얼려놓았던가?


그리고 아침에, 예쁘게 빵과 커피와 스파게티를 담는다.


물론 이것마저 힘들면(보통 아침에 해야할 것이 많을 경우) 한 메뉴를 정해놓는다. 나는 포비베이글의 베이글과 무화과크림치즈를 사랑하는데, 그게 그렇게나 럭셔리한 기분을 준다. 아침에 베이글을 녹이고 살짝 구우면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뜨거운 베이글에 차가운 무화과크림치즈? 두유? 그것만으로 나는 아침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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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니 별거 없다. 원래 삶이란게 죽음을 우연히 피해서 지속되는 것들 아니겠는가. 아침이란, 딱히 시간을 정할필요는 없고 그냥 내가 눈 떴을때를 생각하면 된다. 눈 뜨는게 끔찍하지 않게, 아니 조금이라도 덜 끔찍하게 만드는 것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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