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지인들의 사건사고를 듣다보면 덧없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도 또 지금 눈 앞의 무언가 대신 평생 눈을 감고싶다는 생각도 들다.
그런 내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은 하나다.
지금 이 삶이 똑같이, 앞으로 나아지지도 않고 변화는 악화뿐이라는 확신이
나를 당장이라도 삶을 끝낼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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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마라 안 끝냈다.
어쨌든 지금 결론은, 아무것도 안 하면 악화만 될 뿐 뭐라도 해야한다, 였다.
상황이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나의 선천적 무기력은 발동되었다.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 해 봤자, 바뀌지 않을 모든 것들이 예상되었다.
지금 시험공부를 해 봤자. 나보다 잘 치는 애들로 인해서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점수는 안 좋겠지. 지금 자소서를 써 봤자 취직은 안 되겠지. 내가 회사를 가봤자 결국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똑같은 실수를 하겠지. 지금 노력해봤자, 사회는 계속 이러겠지.
하지만 결국 죽지 않고 삶을 선택했다면, 죽기보다 싫던 <지금 이대로 지속하기>를 끊어내기 위해 레알 뭐라도 해야만 했다. 나의 경우 그게 글쓰기였고 커피를 마시는 거였다.
뭐 대단한 사람을 만나거나 대단한 공부를 해서 업적을 달성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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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 우울증을 겪고,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보일러 소리를 들으며 숨만 쉬는 날이 3년째일때. 창밖의 웃음소리가 ‘너는 이렇게 웃을 일이 앞으로도 없어’라고 비웃는 소리처럼 들리던 3년. 그 3년을 3년으로만 멈추게 해 준 시작점을 잊지 못한다.
그냥 커피 한잔이었다.
어디서 알고리즘으로 뜬 대학가 인기 북카페 10개를 소개한 포스팅.
그 중 하나가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제법 먼데, 갑자기 그냥 뭐라도 하고 싶어졌다. 똑같이 울면서 누워있느라 잠도 몽롱한 뇌를 들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 정확이 어떤 사연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옷을 대충 입고 우산을 들고 갔다.
갑자기 비가 왔다.
처음 가는 동네라 길을 잃었다.
급한대로 비슷해보이는 북카페를 찾아서 들어갔다. 아주 작은 곳의 게스트하우스의 임시거처같은 카페였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활 남은 2년동안 그 카페를 일주일에 한번씩 가게 된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시간을 때우기가 심심해서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그림을 그리다가
글을 쓰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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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거 별거 아니다 내가 쓴 글이 뭐 대작이었겠나, 힘든 시기에 쓴 글이 대작이 되는 뭐 해리포터 작가는 길거리에 널려있는게 아니다. 나는 길거리에 널려있는 쓰레기같은 무기력한 인간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 글을 써서 알게 된 사람과 일을 하게 될 줄이야.
그게 공대라는 전공이 안 맞는 내게 기획이라는 길을 열어줄 줄이야.
기획이라는 일을 하면서 보게 된 여러 레퍼런스 컨텐츠들 중 한두개랑 연이 닿아서 인생 친구들을 만날 줄이야.
나는 그냥 커피 한잔이 급해서 아무 카페나 들어갔을 뿐인데.
그날 그냥 평소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닿고 다시 눈을 감고 침대로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나를 믿기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조금씩 아무렇게나 하다가 새로운 방향으로 갔을 것을 믿는다. 왜냐면 그 커피 이후로 내 삶이 180도 바뀌었다기에 나는 또다시 가족 혹은 사회적 문제로 삶에 회의를 느끼고 숨을 쉴때마다 독가스를 마시는 듯 했으니까. 결국 삶은 갑자기 바뀌거나 위기가 전혀 오지 않는 해피 엔딩, 혹은 배드 엔딩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