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꽤 바빴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읽지 못하는 그 기분이란! (좀 서글펐어요. 저 변심한 거 아니에요.)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에 지인을 통해 추천이 되어 국회의원실에 면접을 보러갔기 때문이다. 처음 본 초선 의원실이었다. 보좌관님 인상이 정말 좋으시고 예전에 근무했던 첫 직장에서 부서는 달랐지만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면접이 잘 끝났고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내 전문 분야인 홍보를 할 수 있는 곳이고 국회의원실은 또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 다음날 의원과의 면접이 있었고 의원은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직원에게 전화를 하여 국회직에 올릴 서류들을 토스해 주라고 지시했다. 아, 이렇게 취직이 되는구나 했다. 그리고 좋더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니. 나는 들뜬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하루만에
이 일을 못하겠다고 이야기 한 이유
1. 기대했던 업무 vs 현실
다음날 나는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출근을 했다. 오전에는 제출할 서류들을 정리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그 때만 해도 남편의 "분위기가 어때?"라고 묻는 카톡에, "일단은 화기애애"라고 답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지시를 할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주로 보좌관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들었는데, 국회직도 아닌 지역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인수를 해 주는 사람과 나를 부르더니, 이런 저런 것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엥? 이 사람은 누구지?' 뭔가 의아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왜 여기에 들어오게 됐는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또 맡게 될 주요 업무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나를 전임자의 업무와 같은 업무를 하게 될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엉뚱한 회의에도 참석시켰다.거기서 본인과 다른 사람이 의견 충돌이 있어 언성이 조금 높아져 설전이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첫날 관련도 없는 회의에 꿔다놓은 보리자루 마냥 있다는 생각에슬며시 일어나 빠졌다.
그리고 오후에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기 시작했다. 차근 차근 업무를 설명해 주었다. '그렇구나, 생소하다.' 등의 생각을 가지고 인계를 받던 중에 내 업무 중 중요한 포션이 내가 원하는 홍보 업무가 아닌 것을 간파했다. 내 고유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직원들의 업무분장이 제대로 되었다는 느낌을 못 받았기 때문이었다.
2. 나의 성향
나는 브런치의 첫 글에도 썼다시피 정부기관에서 근무를 했지만, 당선자의 정치적 입장과는 상관없이 공무원의 지위로 일을 했다.공무원은 어느 당 출신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느냐와 상관 없이 합의된 법적 절차에 의해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물론 대통령의 철학과 국정 운영 스타일에 따라 공무원은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모든 보고서의 톤과 매너 역시 달라지기도 한다.
이번에 의원실에 들어가게 되면서 나는 정확히 나의 성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잘 다듬어진 합의된 전통적 가치 혹은 모두가 정의해 놓은 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국가기관이 가지고 있는 좋은 가치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익숙하다는 것 말이다. 나는 의원실의 일원으로 전쟁터와 같은 이념 대립의 영역에서 의원의 철학을 관철한다는 것이 내 성향과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게 내 홍보 업무의 주요 역할이라니 이 일을 계속 할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3.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사실 다양한 부서에서 일해 본 나는 부서장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서를 이끌어 나가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행사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훌륭한 리더일수록 직원의 의무와 권리 사이에서 잘 줄다리기하며 직원의 업무를 배분하고 설득하는 등의 업무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결국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산도 사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협력하면 넘을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좋아하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높아보이는 산 앞에서 변화를 일으켜가며 신나게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하지만, 나의 성향과 맞지 않은 곳인데 내 열의를 바칠 만큼인가를 다시 냉정하게생각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열의를 바칠 수 있는 조직이여, 어서 오라!
4. 일 vs 가족
직원들의 구글 스케줄러를 확인하니 일정이 빼곡했다. 주말이 없는 삶,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내가 계속 일을 하겠다고 했으면 지금쯤(토요일 오후)이런 글은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직원들이 출근한다는데 내 가족 챙기자고 일을 못본 척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은 출근해서 일은 하겠지만 전혀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토요일, 일요일 내 가족과 지내야 하는 시간은 내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가치만큼 나에겐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그렇게 퇴근을 하고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도 내가 즐겁게 그 일을 할 수 있지 않다면 결정을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소모적인 일에 시간을 쏟고 있는 나로 인해 우리 모든 가족이 행복하지 않은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편과 내 아이들의 퀄리티 있는 주말도 소중하다는 것에 가치를 두기로 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서 보좌관에게 정중히 말씀드렸다. 전날 인수인계를 받던 분위기가 좋았는데 왜 그러는지 의아해하셨다. 나는 차근 차근 위와 같은 이유로 같이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고 일찍 결단하고 말을 해주어 고맙다는 말로 화답해 주셨다. 연애나 일이나 맞지 않을 때는 일찍 헤어지는 것이 맞다.
할 수 있다면 일은 즐겁게 해야 합니다. 당신이 바꾸어 갈 수도 있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그래서 나를 소모적으로 비워가는 일이라면 경단녀라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이렇게 경력단절여성의 하루 취업기는 끝이 났다.'어려운 시기에 너무 배부른 소리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나는 경력단절여성에게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가치를 실현하고 나의 삶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어느 모퉁이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