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오가는 사람들
어쩌면 나는 청적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관심 있는 영역에 관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므로 이 삶을 대체로 만족스럽다. 하지만 매시간 1급수에서의 삶을 감사하기란 쉽지 않다. 1급수에서 벗어나야만 이전의 삶에 감사하게 될 테니까. 평온한 세계를 가만히 경탄하는 시간은 쉬이 오지 않고, 혼탁한 세계를 감지하기란 허무할 정도로 신속하기 때문에.
하루가 볼품없다 느껴질 때면 내게도 동지들이 확실히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요도크를 좋아하던 할아버지처럼 설움을 참으며 살고 있다 생각되는 날이면 반드시 동지들을 모아두고 사랑하는 책과, 작가와, 글쓰기 말고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p.167-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