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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Nov 29. 2024

천천히 살자는 다짐

늘 나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천천히 살자고. 여유를 갖자고. 이렇게 자주 말하는 이유는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조급함과 서두름을 내 마음 안에 들여놓았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야만 하는 의무적 성격을 부여하고, 빨리 잘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 느끼고야 마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습관인 건가. 참 이상하다. 나는 천천히 살고 싶은데 말이다. 


이건 아무래도 오랫동안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는 일이 중심인 삶을 살아오다 보니 생긴 습관인 것 같다. 삶의 모든 순간이 시험 기간인 것만 같다.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일상 속에서 나에게 자꾸만 시험과도 같은 과업을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 나간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자꾸만 빨리빨리를 외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이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인생은 시험이 아닌데. 


이제는 시험이 아니라 경험과 실험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경험을 경험하고 실험을 실험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달려 나가는 삶 말고 매 순간에 존재하면서 그 모든 삶의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고 감각하고 사유하고 음미하면서 그렇게 밀도 높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정답을 찾고 맞히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내 안에서 순수하게 흘러나오는 그 질문들 속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질문을 깊고 진하게 경험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문제에 답하기 위해 어딘가에 존재하는 답(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내 안에 주입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질문을 스스로 만들고 그 질문과 함께 순간순간을 실험하고 여행하면서 자유롭고 여유롭게 천천히 배움을 이어나가며 살고 싶다.


천천히 살고 싶다. 일상의 사소한(사소하다고 치부했던) 일들에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내 삶을 이루는 그 모든 순간을 풍성하게 가꿔나가고 싶다. 내 마음에 항상 여유 공간을 마련해 두면서 그 어떤 순간에도 조급함과 서두름이 내 일상의 균형과 리듬을 깨버리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천천히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천천히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계속 갈망하는 것인지도. 확실한 것은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지 않는 그 멈춰있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그 순간에 불안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휴식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보지만 자발적 휴식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좀처럼 완벽하게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러면서 계속 쉬고 싶다고 되뇌는 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일까.


삶은 길다. 인생이라는 것은 멀리서 보면 짧지만 가까이서 보면 길다. 우리는 삶이란 것을 멀리서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여기 내 앞에 아주 가까이에서 실재하는 그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내기 위해서, 순간순간 속에서 충만함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삶을 길게 보고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차근차근 걸어 나갈 필요가 있다. 그 걸어감의 모든 과정이 쌓이고 또 쌓여서 우리의 인생을 완성할 것이기에. 그 과정의 충실함 없이는, 설사 결승점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인생은 그저 알맹이 없는 속 빈 강정이 될 것이다. 


천천히 산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싶어서 오늘도 괜스레 ‘천천히’ ‘느리게’라는 말을 마음속에 되뇌어본다. 빨리빨리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천천히 사는 일에도 분명히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빠르게 사는 일이 좀 더 어린 시절의 나를 지탱해 주었다면, 느리게 천천히 사는 일이 앞으로의 나를 보다 더 단단하게 지탱해 줄 것이라 믿는다. 빨리빨리라는 허무감과 공허함이 아니라 천천히 느리게라는 충만함과 풍요로움으로 나의 일상과 삶을 채우고 싶다. 자주 멈추고 힘을 빼고 충분히 쉬고 다시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어 나가는 삶. 계속 계속 즐겁게 걷고 또 걸으며 충분히 관찰하고 실험하고 경험하며 음미하는 삶. 달리고 또 달리는 삶이 아닌 이런 삶을 나는 이제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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