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이 아이를 잘 키우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안의 밑바닥을 볼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소리를 잘 질렀나? 내가 이렇게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나? 내가 이렇게 비꼬는 말을 잘했나? 내 말투가 이랬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나는 아들의 부산스럽고 산만한 모습을 보고 결국 한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물론, 아이도 자기가 한 행동을 한번 짚어보고 바꿔야 할 부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끔 따뜻한 한마디를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는 결국 하이톤에 비난이 섞인 목소리로 아이에게 지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이렇게 아이를 혼내고 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아마 '화'와 부정적인 감정이 내 마음을 휘어잡았기 때문이리라. 화와 우울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아이에 대해 비난하며 화를 내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화살을 돌려 나를 비난하게 된다. '조금만 참아볼 걸. 엄마로서 너무 부족하다. 왜 그랬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기분이 우울해진다.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을 조금씩 하겠지만,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심하게 아이를 혼내고 나를 자책하고 패턴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습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분명 우리 아이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엄마인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바로 나 자신을 의미하며, 선택에 따라 나와 아이의 마음과 관계도 달라진다.
실은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너무 자주, 많이 아이를 혼내고 나서 자책을 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날은 평소에 반복되던 아이의 행동에 폭발하듯 화가 나서 정말 어마어마한 막말을 퍼부었던 날이었다. 고통스러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너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평소랑은 달리 너무 심했다. 왜 그렇게 우울한가? 내가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혼냈으니까? 내가 내 모습에 실망해서? 내가 엄마로서 너무 부족해서? 다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우울한 이유는, 그날 아이에게 인정사정없이 막말을 해대며 혼내는 그 모습처럼, 내가 나에게 가혹하게 굴었고, 그걸 모르고 살다가 나와 아이 사이에서 그 모습을 그대로 재연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어제 아이에게 폭발하듯 화를 내고 다그친 건 아이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나에게 한 것이었다.
평소 내가 날 어떻게 대하는지 모른다. 내가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기도 어렵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내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게 되면,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날 어떻게 대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된다. 아이는 마치 나를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같다. 그 거울의 모습이 너무 못나면 마구 지적하고 짜증을 내는 건, 지금껏 내가 아이를 위한다며 했던 훈육이 아니라, 나의 못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했던 나 자신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