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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Lee Apr 05. 2017

빗방울 전주곡

비오는 날의 클래식

지붕위로 툭툭툭,

처마에서 투두둑,

막 돋아난 은행나무의 여린 잎사귀에 톡톡톡,

담쟁이 덩굴을 따라 또르륵...

 

저마다의 음계로 노래하는 빗방울들.

밤새 내 귓가에서 울리는 빗방울들.

 

온몸을 공명하게 만드는 빗소리

대기 중에 떠도는 작은 물방울들.

 

비오는 날이 좋다.

이런 날에 따스한 온기를 담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이럴때 생각나는 클래식 하나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중 15번째

일명 빗방울 전주곡이다.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이 작곡한 24개의 전주곡(24 Preludes, Op.28)의 15번째 곡의 별칭이다.

쇼팽 자신은 이 전주곡들에 따로 부제를 붙이지 않았다.

이 곡들이 유명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이 곡들에 다양한 별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15번은 누구나 '빗방울'이라 불렀다.

이 곡의 왼손의 반주가 반복하는 음울한 음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전주곡이 24개가 된 이유는 모든 조를 다 썼기 때문인데 그 점은 바흐의 전주곡과 같다.

다른 점은 바흐는 전주곡에 푸가가 붙어 있고 반음씩 올라가는 순서로 배열했지만,

쇼팽의 전주곡은 독립적이며 완전5도씩 뛰어 5도 원(circle of fifths)을 그리는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24개의 전주곡이 발표되었을 때, 곡들이 너무 짧고 구조적이지도 않아 평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곡들의 아름다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던지,

지금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명곡이 되었다.


26세의 쇼팽은 리스트와 함께 아구 백작이라는 집에서

당시 유명한 여류 소설가  조르쥬 상드를 만났는데

남성적이었던 상드와 여성적이었던 쇼팽은 서로 한 눈에 반해 버렸다.

동거에 들어간 쇼팽은 상드와 함께 폐병치료를 위해

지중해의 마죠르카라는 섬으로 떠나고,

그곳 농가에서 작은 거처를 하나 마련하게 된다. 

‘바람의 집’이라고 할만큼 바람이 거센 이 집에서 쇼팽은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남국의 태양을 기대하고 왔지만 곧 장마철이 시작되었고 매일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드디어 쇼팽은 악성 기관지염으로 각혈까지 하게 되어

근처  수도원으로 옮겨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마침 수도원에는 상드가 쇼핑을 나가고 없었고.

혼자 의자에 앉아 창가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던

쇼팽은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침 비는 멎어서 처마 끝의 빗방울이 단조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고…’

상드는 '빗방울 전주곡'을 처음 들었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음울한 단조의 연탄음이 어쩐지 쇼팽의 처지와 이별을 연상시키고 있다.

빗방울 전주곡을 끝으로  상드는 이후 쇼팽과 헤어진다.

이 빗방울 전주족과 앞서 소개한 이별의 곡은 

이들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을 담아서 그런지

나에겐 서로 닮아 있다고 느껴진다.  


 

Prelude: Op.28 #15 (빗방울전주곡. 작품28의 제15곡: Prelude. #15)

https://youtu.be/BczgDb9-ctQ

 

 빗방울 전주곡과 에뛰드에 관해서는

폴리니(Maurizio Pollini)의 연주가 제일 마음에 든다.

굉장히 차분하고 섬세한 멋이 있다고 할까.

루빈시타인이 극찬에 마지 않았다고 하는

쇼팽 콩쿨의 만장일치 우승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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