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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나 신 Oct 29. 2020

저는 내성적인 집순이 개엄마입니다

외향적인 사교가만 일을 잘할 것 같다고요? 저도 잘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싹싹한 분위기 메이커. 완벽한 자기 관리로 일도 노는 것도 열심히 하며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소셜 버터플라이.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스테레오 타입이다. 모든 고정관념이 그렇듯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살아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믿었기에 면접을 갈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마다 이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입가의 경련을 누르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나누고 온 날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 잦은 이직 탓에 1년에 한 번 꼴로 겪어야 했던 새로운 회사의 첫 출근날은 항상 너무 떨리고 불편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사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고즈넉한 곳을, 큰 규모보다는 작은 규모의 모임을 선호하고, 사교 활동이 아닌 독서나 영화 같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내가 남들에게 말하던 내 모습과는 정 반대의 사람이었다.




내향성의 힘

그러던 어느 날, 습관처럼 듣던 테드 토크에서 우연히 수잔 케인의 내성적인 사람들의 힘에 관한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이 강연과 그녀의 저서 콰이어트는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녀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가장 지배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외향적인 사람을 흉내 내지만, 내향성은 외향성과는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숨겨지거나 고쳐지기보다는 권장되고 축복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그룹 활동이 집중력과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열린 사무실 환경에서 오히려 소통이 단절된다는 연구가 뒷받침하듯 단체 워크숍이나 그룹 활동, 칸막이가 없는 열린 사무실은 모든 유형의 사람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다. 고독을 즐기던 사상가와 사회운동가가 보여주듯 외로움 또한 누군가에게는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준다. 나같이 단순 네트워킹에 젬병인 내향적인 사람은 영업직 등 고객을 상대하는 일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상대방의 말에 진심을 다해 귀 기울이며 깊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온전한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페이스북의 최고 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말한다. 모두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에서의 프로페셔널한 '나'와 회사 밖 주말의 인간적인 '나'를 분리해서 산다면 일터에서 진정한 관계를 쌓을 수 없을 것이며, 조직에서 얻는 동기부여 또한 없을 것이라고. 이는 단순히 내향성이나 LGBTQ 같은 정체성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날그날의 내 감정, 불만과 고충, 신념, 취미 등 나를 만드는 모든 요소에 관한 것이다.


영어 시간에 안부 인사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먼저 (또는 유일하게) 배운 아임파인땡큐 때문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로봇처럼 잘 지낸다고 말하고 있지만, 요즘 바빠 죽겠다고,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이번 달 KPI가 엉망이라 걱정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을 때 우리의 대화는 한층 더 풍요롭다. 취미 또한 그렇다. 대화에 끼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패러글라이딩이나 스쿠버다이빙 같은 그럴싸한 취미를 하나쯤 만들어야 할 것 같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많은 공감과 열렬한 관심을 받았던 취미는 태국 전 직장 동료의 'Sleeping (잠자기)'였다.


그래서 나는 낯을 가리고 내성적인 내 성격이, 특별할 것 없이 단조로운 집순이로서의 주말이, 사랑하는 강아지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개엄마 일상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공한 커리어우먼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지만, 내 업무 능력과 성과는 성공적이니.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다양성에 대처하는 회사의 자세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보여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다양성과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양성 평등, LGBTQ, 인종/문화의 경우 대부분의 회사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의식적으로 인식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조직들은 이 외의 부분에 있어서는 미미한 노력을 보였다. 아직도 언제 어디서든 발표를 잘하고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인정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성격상 주목받고 발표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적극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선천적으로 리더십의 자질이 없는 사람도 사람을 관리하는 것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는 기여하고 있을 수 있다. 보다 건강하고 공정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평가와 보상뿐 아니라 사내 문화를 조장에 있어 이런 진정한 다양성 또한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다. 회사에서의 일상이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피로하다면, 그만 가면을 내려놓고 개썅 마이웨이 해보자. 그리고 그 귀중한 에너지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다른 것에 쏟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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