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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나 신 Oct 30. 2020

완벽한 회사라면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1년에 한 번꼴로 회사를 옮겨 다니던 나를 붙잡은 한마디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팀원들도, 직무 자체도 무난하게 마음에 들었지만 문제는 기술과 프로덕트였다. 이전까지는 스타트업 문화가 뚜렷한 조직에서 투명하고 애자일 하게 일했기에, 비즈니스팀은 프로덕트팀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도구와 상품을 그저 사용해야만 하는 새로운 환경이 낯설고 의아했다. 이건 누구를 위해 왜 만든 거지?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릴리스하기 전에 초기 테스트는 진행한 건가? 진행했다면 어떤 가설로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제한된 접근 권한, 문서화의 부족, 분산된 기술팀, 미국과 유럽 중심의 우선순위... 하루가 멀다 하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자 옛 나날들이 그리웠다. '나의 개인적 믿음과 애정이 있는 상품만 다른 사람에게도 마케팅하고 판매할 수 있다'는 직업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깨지자 혼란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 아닐까요?

이야기를 듣고 내 매니저가 꺼낸 첫마디였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회사였다면 우리가 아직까지 여기 있겠어요? 정말 완벽한 회사라면 우리보다 더 완벽한 사람이나 로봇이랑 일하고 있지 않을까요? 조신씨도 저도,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채우기 위해 고용된 겁니다. 저도 불편하고 불필요한 프로세스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 같이 개선해봐요. 쉽진 않겠지만 같이 해보자고요."


내 안의 틀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조직의 구조와 문화 또한 내가 개선할 수 있는 하나의 큰 프로덕트구나. 사실상 조직도의 거의 맨 밑바닥에 있는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내부의 혁신과 변화는 윗선이나 인사팀만이 주도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 당연시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라떼는 어땠을까

우리 팀은 시장의 트렌드와 파트너의 니즈에 따라 매달, 매 분기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새롭게 진행한다. 돌아보면 내가 처음 입사한 1년 반 전에 비해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도 이렇게나 많이 변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 환경은 처음에 비해 얼마나 많이 나아진 것이었을까.


내 매니저는 우리 회사에서 일한 지 5년이 넘었고, 매니저의 매니저는 얼마 전 10년 재직을 기념했다. 요즘은 윗사람이 옛날 얘기를 하면 흔히 '라떼는 말이야~' 라며 풍자하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오랜 기간 조직에 몸담은 동료나 상사를 보면 자연스레 그때는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그들이 과거에 직면했던 문제, 문제에 접근했던 방식,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결과물은 종종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지 가르쳐주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링크드인 구직란에 들어가 보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물론 일은 일이기에 매일매일이 꽃길은 아니지만, 희망이 없어 떠나야겠다 느낀 적은 첫 고비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에 일했던 곳들과 무엇이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곳은 완벽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조직을 완벽하게 포장하고 긍정적 태도를 강요하기보다는 조직의 불완전함과 이로 인한 불편과 불만족 또한 인정하고 존중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다섯 번의 이직을 거치며 무의식적으로 찾고자 했던 것은 '회사가 원래 그런 건데 왜 너만 그렇게 부정적인 거야?'라 비난하는 대신 '그래, 나도 너무 불편하고 싫어. 어떻게 하면 이걸 덜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 공감하고 응원하는 문화였는지 모른다.




모든 조건이 갖춰진 자리에서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누구가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러니 상품이든, 프로세스든, 시스템이든, 문화든, 지금 일터에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 불만족을 원동력으로 활용해보자. 그게 우리가 고용된 이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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