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Aug 27. 2020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아프리카 오카방고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 사자들이 주변 가축을 공격하는 피해가 종종 발생했다. 이곳에서 호주의 한 연구팀이 실험을 벌였는데, 소의 양쪽 엉덩이에 커다란 눈을 그려 넣었다. 4년간 관찰했더니, 그냥 내버려 둔 소는 835마리 중 15마리가 사자에게 공격당해 죽었는데, 눈을 그려 넣은 소 683마리 중 사자에 희생당한 소는 한 마리도 없었다. 단지 엉덩이에 그린 눈이 소들을 살린 셈이다. 아마 사자가  뒤를 쫓다가 눈 뜬 엉덩이를 보고 움찔 했겠다. 약한 존재는 눈을 바로 떠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자연다.

연합뉴스  '소 엉덩이에 눈 그려 넣었더니...' (2020.8.12)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봐?"라는 말을 듣는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주로 강자가 약자에게 권위를 내세울 때 그런 말을 쓴다. 사람이 서로 눈을 맞춘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눈을 내리깔라는 말은 너를 동등하게 인정 않겠다는 뜻이다. 사실 그 말은, 찔리는 게 있거나 속내를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 시선은 상대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의 힘이 된다.


사람 사이 관계도 서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생태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접촉에 따른 친밀도를 12단계로 나누었다.  시작 눈을 맞추고 바라보는 것(eye to eye)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서로 눈이 맞아서'라거나 '첫눈에 반해서'라는 말은 시선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한다. '눈총'이라는 말에도 시선이 총과 같은 힘을 가진다는 표현이 들어있다. 사자가 소를 공격하려다가 소 엉덩이가 눈총을 쏘아대는 것에 놀라 그냥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신기하기도 통쾌하기도 하다.  

연합뉴스 '소 엉덩이에 눈 그려 넣었더니...' (2020.8.12)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은 삶과의 동행에 있다. 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 동안 하루가 흐르고,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는 순간에 을 마감한다. 눈은 몸에서 유일하게 외부에 노출된 뇌라서, 감각기관으로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들을 다 해낸다. 루게릭병으로 신경세포가 죽어가며 온몸이 마비되어 갈 때, 눈동자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움직이며 뇌에 간직한 생각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달한다. 시선은 삶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꿩은 매에 쫓겨 도망가다 다급하면 풀숲에 머리를 처박고 자기가 숨은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떤 꿩은 땅에 등을 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가오는 매의 가슴팍을 걷어차치명상을 입힌다고 한다. 무엇인가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에 우선 감사할 일이다. 


삶에서 가끔 사자나 매 같은 것이 위협하며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숨을 곳으로 냅다 달릴 것이 아니라 일단 '눈을 똑바로 뜨고' 상대를 잘 쳐다보면서 대응해야겠다. 다만 삶의 엉덩이에 뭔가 눈을 그려 넣을 것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도 한번 생각은 해봐야겠다.  


이전 24화 티 좀 내지 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