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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1. 2019

Since와 Once

언제부터인가 스타벅스 냅킨에 ‘Since 1971’이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아마 시애틀의 작은 원두 소매점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한 전통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다. 이처럼 간판 한편Since와 함께 설립연도를 적어놓고 역사를 뽐내는 몇몇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내 이름을 쓰고 Since를 뒤에 붙여본다. 폼나기는 커녕 지난 시간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장사는 잘 꾸려가다가도 갑자기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은 대강 삶을 꾸려가도 그냥 살아진다. 그래서 장사는 Since 뒤에 붙은 버티고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자랑이 되지만, 사람에게는 백세 노인 정도가 아니고서야 세월만 가지고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주변의 모든 사물, 관계 그리고 감정에도 Since를 붙일 수 있다. 우리 집 어항 속 물고기는 Since 2017, 고무 나무는 Since 2015, 내가 지금의 회사를 다닌 것은 Since 2005, 그녀를 만난 것은 Since 1997, 내가 너를 좋아한지는 Since… 좋은 Since를 많이 가꾸거나 새로운 Since를 많이 만들어내는 이의 삶은, 이어가거나 시도하는 것이 풍부한 삶이기에 그만큼 건강하다.

영화 Once (2006), 네이버 영화

한 번의 새로운 시도나 경험은 기억이나 관계를 통해 이후로 이어지고 또 다른 일에 사라지곤 한다. 영화 ‘Once’에서 청소기 수리공인 ‘그’는 거리에서 노래하다 우연히 ‘그녀’를 만나고, 음악 작업을 같이 해가며 관계를 맺지만, 결국 각자 다른 인생의 길 앞에서 헤어지는 선택을 하고 만다.


모든 Since는 Once에서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며 또 다른 Once에 의해 사라진다. 요즘 제각각 오랜 Since들이 Once에 의해 없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결국 새로운 Since를 이루며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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