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잘 듣고 보면 사랑한다는 말
결혼한 동생부부가 명절을 비롯한 여러 기념일들을 시끌시끌하게 만들어준 덕분에 본의 아니게 독신녀 누나(?)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내가 굳이 동생과 상의해서 사다 놓지 않아도 카네이션이 있고, 고생스럽게 차린 한상은 물론 손가락 하트를 곁들인 인증샷까지 가족 단톡방에 한가득, 부모님은 왠지 우리 남매가 어렸던 시절의 어버이날로 돌아간 기분이실 것 같다. 깨발랄한 동생 와이프 덕분에 무뚝뚝한 나는 애쓰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도 되어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정작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다. 얼마나 많은 약을 드시고, 언제 병원에 가고,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고, 투닥거리는 노부부를 보는 일은 나의 몫이다. 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사람을 좀 차분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수긍하고 이해하는 차분함보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차분함이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기에는 버겁고, 여러 일상들을 마주하는 것은 자꾸 쓸쓸해진다. 설거지를 하다 괜히 삐걱대는 싱크대 문짝을 발로 걷어차며 "사람도 늙고 집도 늙고 환장하것네."하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좋은 것도 있다. 노부부의 귀여운 순간을 직관할 수도 있다. 이건 엄청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 깊게 느끼게 된다. 둘은 마치 싸우듯 투닥거리는 상황이지만 관객인 내 앞으로 알 수 없는 볶은 깨들이 쏟아질 때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시집도 안 간 딸을 앞에 두고 지금 둘이 뭐 하는 겁니까... 노부부가 젊었을 때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는지를 역시나 직관했던 1인으로서 정말 결혼, 배우자라는 건 무엇일까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랜 세월을 그저 함께 한다고 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만 관찰해 보니 서로가 건드리지 않고 한 수 접어주는 포인트들이 있다. 서로가 접어주는 수가 많을수록 집안은 평화롭다. 하지만 갑자기 한쪽이 수가 틀려 접던 걸 안 접으면 이제 그날은 나의 눈동자가 바빠지고 집안 공기의 냉랭함을 해소할 깨방정 코스튬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 날이다. 다행인 건 두 분 다 나이가 들어 젊은 시절의 격렬함과 텐션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처럼 싸움에도 탄력이 없어진다. 이건 좋은 현상이다.
가장 마음이 이상할 때는 부모님이 훌쩍 나이가 든 딸을 어린 시절과 똑같이 대하는 순간이다. 일찍 출근하신 아빠가 카톡으로 비가 많이 오니 우산을 꼭 챙겨가라, 테니스 치러 가는 딸에게 놀리듯 삑사리 내지 말고 와라, 바나나가 아주 달고 맛있으니 먹어봐라, 꿉꿉한 마음에 맥주 한 캔 따고 있으면 아이고 주당이네 주당, 회사 때려치우면 밥은 주께, 이런 말들을 들으면 아빠의 경험과 인생이 묻어나는 깊은 말들보다 더 마음 한편이 푹신해지는 느낌이다. 건강하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었던 11살 즈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
반대로 엄마는 나에 대한 사랑과 기대치가 한껏 높았던 탓에 내가 정작 어릴 때 듣고 싶었던 말들을 그때는 안 해주더니 그때의 엄마가 나이가 되어 있는 내게 이제야 그런 말들을 조심스럽게 하나둘씩 꺼내놓는다. 서로를 지독하게 이해하지 못하던 두 사람이 적당한 거리를 거의 40년 만에 찾은 것이다. 서로가 다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방식을 깨닫는 데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내가 한 사람의 주체로서 온전하게 서고 나발이고, 나는 엄마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정말 다 괜찮은 것 같다.
동생이 결혼과 함께 집을 떠나면서 한동안 마치 내가 저 노부부를 책임져야 할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었다. 단언컨대 우리 부모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식에게 짐이나 부담이 되려고 하는 분들이 아님에도 나 혼자 꼴값을 떨었다. 이제야 3인 체제가 조금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부모님을 위한 인생을 살 수도 없고 내가 무얼 하든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준 마음과 행동의 반의 반의 반도 못하겠지만 요즘 내가 뭔가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랑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서 해야 하는 여러 걱정들을 나를 온전히 믿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했고, 내가 나 꼴리는 대로 사느라 고생길을 파워워킹 하는 것도 모르고 가족들이 받을 상처들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세 식구, 누구 하나 뾰족하지 않고 모두의 밸런스가 좋은 시절이다. 그 밸런스가 세상 기력 좋던 세 사람이 모두 나이가 들어 한 풀 꺾인 데서 기인한 것이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 뭐 어떤가. 나에게는 여전히 멋으로 밑단을 찢어낸 청바지가 다 낡았다며 쪼그려 앉아 실밥을 쪽가위로 잘라주는 아빠와, 회사 그 새끼가 나쁜 새끼라고 같이 욕해주는 엄마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