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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21. 2023

마케팅, 하지 말까?

하지만 배운 도둑질이 이것뿐이라

누군가가 지금 하는 일이 재밌냐고 물었을 때 나는 큰 망설임 없이 "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에이전시, 대기업, 스타트업, 프리랜서 등 여러 입장에서 브랜딩, 마케팅을 하면서 나름의 고충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일이 재미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을 하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좋은 동료들과 아등바등하며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을 때의 쾌감이랄까. 다 내가 한 것도 아니지만 괜히 뿌듯하고 변태처럼 보고 또 보고 그랬다.


사실 마케팅부서는 동네북이다. 잘되면 제품이 좋은 거고 망하면 마케팅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기 딱 좋은 직무이기도 하다. 다들 피드백이라고 생각하고 주지만 대부분 '느낌적인 느낌'인 감상평을 준다. 그리고 늘 손쓸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받는다. 제품, 서비스는 다 만들어져 있고 이제 마케팅만 잘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에 제일 민감한 부서이기도 하다. 회사 상황이 가장 안 좋아지면 먼저 줄여지는 것이 마케팅 비용이다.


나는 어떤 것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그걸 여기저기 소문내는 것을 잘한다. 아마도 이게 마케팅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똥을 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똥의 장점을 꾸역꾸역 찾아내서 제일 앞에서 보여주고, 똥의 정말 똥적인 면모를 스윽 뒤로 미뤄두는 일. 그리고 그 장점이 거의 대부분인 것처럼 교묘하게 포장해서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너무 사기꾼 같은가?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찾아보면 그 제품의 장점인 척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하나씩은 있다. 그걸 보여주고 파는 거다.  


심지어 이러한 재능은 연애할 때도 발휘되어 별로인 남자의 장점을 착즙하여 정말 번듯한 남자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아 하던 친구들도 결국에는 내 남자친구를 다 좋아해 버리게 만드는, 타고난 마케터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장점을 발견하고 잘 설득해 내는 정말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일에 왜 이렇게 회의감을 느끼게 된 것일까. 15년째 일을 하면서 여러 고비와 부침은 있었지만 이렇게 이 일을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느끼는 것은 처음이다.


뭔가를 생산하거나 파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말 그대로 '부가'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기 때문에 없다고 해서 아주 큰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니다. 판매가 어려워질 뿐이다. 하지만 그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돈을 쓸 결심'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돈 쓰는 사람들의 마음이 여기서 어려워진다. 그 결심은 원하는 숫자가 찍히지 않는 순간 사정없이 흔들리고 역시 별로 효과가 없다 하고 접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 이 일에 대한 나의 애정과 무관하게 이 부가적인 일에 내 남은 커리어를 더 때려 박아도 되나 싶은 것이다.


사람 마음을 사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마케팅을 할 수 있다. 그게 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다. 타고난 매력이 있거나 제품이 너무 좋다면 일단은 사장님 방향으로 세 번 절하고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믿음이 늘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케팅은 믿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과를 위해 한 번 더 의심하고 효율을 점검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소비자인 너의 눈에 한 번 띄어 찐한 사이가 한 번 되어보겠다는 믿음 자체는 흔들리면 안 된다.


나는 그런 공을 들이는 과정이 좋았다. 이 사람이 이걸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보여줄까, 영상으로 보여주면 더 좋아해 줄까, 말을 좀 더 예쁘게 해 볼까 등등 그렇게 고민하면서 가꾸어나가는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그리고 디자이너, PD, 카피라이터 등등 내 생각을 작업물로 만들어주는 마법사 같은 친구들과 일하는 시간은 더 좋았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고 이렇게 절절하게 사랑고백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점점 녹록지 않아 지는 걸까.


일을 손에서 좀 놓고 저 멀리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처럼 대하면 더 선명한 이유를 알게 될까. 더 하든지, 때려치우든지 어쨌든 간에 내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일과 나의 관계를 한 번 다시 점검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아마도 배운 도둑질이 이거라 계속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으니까. 우리 사이가 더 오래가려면 서로 어떤 변화와 노력의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게 되면 좋겠다. 월요일 출근을 앞둔 이 시간, 나와 같은 이유로 고민하고 있는 마케터 여러분 모두 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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