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데 예전만큼 안된다고 느껴질 때를 잘 넘기기
직장생활의 끝은 꽤 일찍 보였다. 한 8-9년 차 접어들었을 때, 이걸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때 내 나이가 고작 서른셋, 서른넷이었나. 결론적으로 끝이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틀리지는 않았는데 그 확언을 하기에 조금 이르지 않았나 싶긴 하다. 어쩌면 저때가 중니어로서(?) 나름 직장에서 인정받기도 좋고 일에 대한 성취감도 한껏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기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들 인정할만한 안정적인 직장이었음에도 나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회사는 나가면 땡인데. 내꺼도 아니고.
그렇게 몇 년을 더 굴렀더니 지금이 되었다. 끝은 더 가까이에 와 있었다. 사실 그 누구도 끝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 끝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있다. 나의 인생을 남의 일에 더 맡기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 뒤에 더 숨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물론 나이가 들어도 더 잘 해내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있다. 이직을 많이 한 나를 신기해하는 것만큼 나는 한 회사를 20년씩 다니는 사람들이 제일 존경스럽다. 팀장을 달고 나면 회사생활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데 그 시간을 다 버티고 있다는 뜻 아닌가.
꼭 회사생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친구 얘기만 들어봐도 그렇다. 예전에는 뭔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그래도 돌아오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게 너무 안 먹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노력과 성공의 인과관계가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아는 나이인데도 이 당황스러움이 전에 느끼던 것과 사뭇 다르다. 많은 또래 친구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 살아오던 방식으로는 예전만큼의 성과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각자의 모퉁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나쁜 선택을 하기 쉬운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각자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고 선택도 무거워지는 시기인 만큼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상한 선택을 해버리는 선배들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도구로 삼아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한다든가, 성공에 가속을 붙이기 위해 신기루 같은 꿈을 좇는다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회피형 인간이 되어버린다든가. 사람이 약하면 악해진다는 말을 나는 점점 더 강하게 믿게 된다.
늘 살아오던 방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일단은 두렵고 겁이 난다. 점점 더 편하고 익숙한 게 좋아진다. 삶의 큰 틀을 바꾸는 건 마치 나는 서쪽으로 가려고 낑낑대고 있는데 나와 허리를 묶은 저 반대편에 강호동 같은 사람이 동쪽으로 가려고 하는 느낌. 힘들고 그만하고 싶고 진이 빠진다. 하지만 동쪽으로 끌려간다면 더 이상 애는 쓰지 않아도 되겠으나 남은 인생 내내 찝찝할 것 같다. 그 미련을 해소하느라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할까. '존버'는 굉장히 위대한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버티면서 살기에 우리의 남은 삶이 너무 길다.
결국 내 손으로 바닥부터 하나하나 일구어나가야 수확량이 많든 적든 온전한 내 그릇이 생기는 듯하다. 소득의 관점에서만 보면 급여로 먹고사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겠지만 나처럼 일을 삶으로 쭉 가까이 끌어안고 들어오는 사람은 결국 온전한 나의 것, 하다못해 내가 하는 만큼 성과와 성취를 느낄 기회가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덜 지치는 것 같다. 나의 바닥을 다시 들여다보고 거기서부터 하나하나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아찔하긴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고단하게 시간을 보내면 나쁜 선택을 할 틈도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는 그때보다 경험도 많고 덜 서투르니 조금은 수월하게 갈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도 나에 대해서 예전보다 잘 아니까 살살 어르고 달래면서 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든든한 것은 지금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이다. 혼탁한 줄도 몰랐던 관계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속으로는 '어휴, 저거 솔삼 또 어쩌려고 저런대.'하지만 결국엔 나를 부둥부둥해주고 함께 깨춤을 춰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믿고 또 열심히 한 번 나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