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없고, 살 게 없고, 살기는 어렵다
앞에서 좋은 이야기 실컷 했으니 이제 또 내돈내산 솔직후기를 써야 할 차례다. 고객 편의를 위해 최적화된 패키지였고, 여행 자체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어서 그냥 넘어가려면 넘어갈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내가 남들 여행 후기를 보면서 얻은 정보들처럼 누군가는 참고할 수도 있으니 '나에게' 불편했던 것 위주로 그냥 몇 가지만 얘기해보려고 한다.
1. 음식
이건 사실 조금 예감은 했었다. 가족들과 몽골 여행을 갔을 때, 나는 음식이 너무 안 맞아서 여행 자체에 대한 기억이 별로였는데 이번에도 느낌이 왔다. 사막...? 양고기? 힘들겠군. 원래 해외 나갈 때 컵라면 같은 거 절대 안 챙겨가는데 이번에는 일찌감치 깨닫고 컵라면을 주섬주섬 챙겼고, 사흘째 되는 밤에 커피포트도 없는 호텔방에서 룸서비스로 핫워터를 외치며 육개장을 깠다.
돼지고기 안 먹는 것도 괜찮고 소, 닭, 양 다 괜찮은데 고기요리 전반적으로 풍기는 향신료의 향이 도통 입맛에 안 맞았다. 내가 갔던 식당들은 그래도 모로코에서는 꽤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이었을 텐데도 식전빵으로 나오는 빵만 실컷 뜯어먹고 올리브만 주워 먹다 왔다. 닭들도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뛰어놀았는지 너무 질겨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믈렛을 달라고 하면 뭔가 계란부침개가 나온다. 아몬드 모양의 오믈렛을 쭉 갈랐을 때 부드럽게 흐르..그딴 거 없다. 파프리카와 베이컨이 들어간 계란전이다.
커피가 맛이 없다. 산미 같은 건 기대하지도 말아라. 다행히 나는 산미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탕약 같은 커피도 잘 마셔서 괜찮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마시는 커피는 단맛이 좀 빠진 쌍화탕에 가깝다. 그리고 카푸치노를 시키면 우유폼이 아닌 휘핑크림이 올려져 나온다. 휘핑이면 차라리 다행이고 거의 버터크림 수준의 꾸덕한 크림이 올라간다. 민트티를 많이 마셔서 커피맛을 굳이 발전시킬 이유가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는 커피를 매일 마셔야 하는 사람은 괴로울 것이다. 그리고 유럽도 마찬가지겠지만 물은 무조건 페트에 든 걸로.
술은 까르푸 같은 곳에서 살 수 있다. 호텔에서는 룸서비스도 가능하고 식당에서 외국인들에게는 판매하기도 한다. 마트에서는 그래도 이슬람 국가라고 대놓고 마트 잘보이는 곳에 두지 않고 계산하고 나가서 저어기 구석탱이에 가야 살 수 있다. 심지어 모로코에서 생산하는 와인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그들이 깔아 둔 인프라로 와인도 생산한다. 너무 맛있어서 왜 한국에는 수입이 안되냐고 물어봤더니 이미 유럽에서 다 가져가서 한국까지 들어올 게 없다고 한다. 야, 유럽 너네 식민지도 그렇게 해 먹었는데 그러지 말고 좀 나눠먹자.
2. 쇼핑
살 게 없다. 오랜만에 멀리 떠나는 여행이라 야심 차게 600유로나 바꿔갔는데 반도 못쓰고 왔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독특한 무늬의 그릇이나 모로칸 러그 같은 걸 살 수도 있겠으나 이건 약간 화물의 영역이라 내가 커버할 수 없었다. 100% 모로코 아르간 오일 같은 게 있는데 이건 아는 사람 통해서 사야지 시장에서 사면 콩기름 같은 짝퉁을 사게 된다. 페스의 가죽공방에 가면 정말 질이 좋은 가죽 제품들이 많은데 원단을 사 와서 한국에서 가방을 만들고 싶지 이미 만들어진 가방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중국에서 디올 만든다고 머리채 잡을 것도 없다. 디자인 값이고 브랜드 값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올리브 하나만 조졌다. 작년 스페인이 홍수 때문에 올리브 농사를 망쳐서 올리브 가격이 엄청 올랐는데 의외로 모로코가 올리브 산지라 아직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말에 나는 캐리어를 올리브오일로 채워왔다. 시장에는 우리나라 젓갈집처럼 아예 올리브를 종류별로 쌓아놓고 판다. 물론 지중해 사람보다 올리브를 더 좋아하는 유럽 입맛 경상도 출신 아빠의 주문도 있었다. 왜 갑자기 올리브유 풀링을 하신다는 거지... 아무튼 올리브, 이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호텔 조식에 늘 나왔던 고트치즈도 너무 맛있어서 냉장보관만 아니면 잔뜩 사 왔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아쉽다.
혹시나 환승이 이스탄불 공항이라면 유로를 아껴뒀다가 이스탄불 공항 면세에서 쇼핑하시라. 거의 인천공항급으로 공항이 크고 브랜드도 많이 들어와 있다. 한국에 씨가 마른 보테가 베네타 안디아모가 깔별로 있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나에게는 6000유로가 있는 게 아니므로 구경만 하고 조용히 눈물을 닦으며 비행기 타러 갔다...인천공항 면세점과 가격비교는 안해봤으니까 잘 알아보시고...
3. 여자
길을 걷다가 갑자기 기도를 하든, 라마단 때 금식을 하든, 그런 건 다 그들의 문화이니까 '오-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는데 존재하는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지우는 건 내가 거기 살 게 아니어도 도통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모로코는 국가 전반적으로 조금 개방하는 분위기도 있고 의외로 히잡 안 쓴 사람도 많았는데 아마 내가 본 건 극소수 아닐까. 일단 본처가 4명까지 허락되는 것부터가 이상하고(반대도 가능하다면 문제없음), 여자들은 카페에 나와서 앉아있을 수가 없다. 다들 할 일 없는 남자들이 앉아서 커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있다.
모스크에서 남자들과 기도를 같이 드릴 수도 없다. 핫산 2세 사원 같은 경우에는 남자들은 1층, 여자들은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고 안에서만 밖이 보이는 나무 장식으로 가려진 2층에서 기도를 해야 한다. 내가 히잡을 쓰고 안 쓰고는 아버지 또는 남편의 스탠스에 달려있다고 한다. 엄청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 눈만 내놓고 다녀야 하고, 의외로 쿨한 남편을 만나면 히잡 안 쓰고 다녀도 되는 거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걸 어디까지 문화로, 어디까지를 불편함으로 인지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이드에게 설명을 듣는 내내 좀 그랬다.
앞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특정 문화를 대상화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이해해 가는 과정이 좋았던 만큼 동등한 한 성별을 대하는 태도나 억압의 잔재들을 보면 같이 어깨동무하고 위아더월드 하기가 쪼오금 싫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경전의 해석과 행동 강령 같은 것들이 불교, 기독교 보다 유독 더 강렬하게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기독교 같은 경우에도 마녀사냥도 있었고 면죄부도 쓰고 뻘짓을 많이 했지만 지금에 와서 대놓고 차별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슬람은 왜 유독 심할까.
이 또한 내가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의 삶을 너무 납작하게 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나 나는 꼴랑 10일짜리 여행객이므로 '저게 뭘 안다고'하면서 조금 모른척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숙소인데 나는 여행사의 도움으로 다 예약이 되어있던 상황이라 그 내용은 조금 부족하다. 나처럼 호텔에 묵는 방식 말고 메디나 그 좁은 골목길 곳곳에도 '아니 여기 이런 곳이 있었어?'소리가 나오는 멋진 숙소들이 많다고 하니 이것은 구글신께 여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