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5일째. 냄새와 기억

빠바빠빠 빠지기는 빠지더라

by 하마

헤어지기 직전, 전 애인은 무방비한 상태로 쿨쿨 자고 있었다. 외도의 흔적을 발견한 뒤 자는 그를 깨워 30분 만에 이별을 하고 펑펑 운 뒤에 힘이 다 빠져서 침대에 누웠더니 그의 냄새가 무방비 상태의 나를 덮쳤다. 성난 기세로 침대를 뒤집어엎은 뒤 이불이며 베개 커버까지 싹 벗겨다 빨고는 널어놓은 지 5일째. 건조대 위에 바삭하게 마른 그 이불을 걷질 못하겠다.


망할 놈의 후각 기능

후각을 관장하는 뇌의 부분이 추억을 관장하는 곳과 가깝기 때문이라지, 냄새가 기억을 쉽게 끄집어내는 이유가. 원래 사람의 체향에 민감하기도 하고 전 애인의 냄새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집에 있는 온갖 패브릭에서 그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집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 천에 코를 파묻게 되는 것이 두려워 허겁지겁 보이는 족족 빨아재꼈다.


그러고 나니 무기력증에 걸린 것처럼 그 빨래를 개기가 싫더라. 몇 날 며칠을 옷 방 한가운데에 건조대를 둔 채 이리 밀고 저리 밀며 살았다. 빨래를 개고 깔끔해진 옷방을 마주하기가 싫었다. 냄새와 정리 사이의 그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고 싶었다.


아마 그게 내 상태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아직도 집 한 켠에는 이불이, 한쪽에는 베개 커버가 널브러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쑤셔 넣어 둔 선물 받은 인형과 그가 입던 티는 근처에만 가면 레이더처럼 이미 존재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마치 신경 쓰지 않는 척 가지고 오려던 물건을 들고 쏜살같이 그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저걸 다 내다 버려야지 싶다가도 일단은 유보하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미뤄두었다. 감정의 정리부터 물건의 처분까지. 헤어짐이라는 큰 결단을 내렸으니 이 정도는 괜찮잖아? 하면서 다음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유보했다. 이불은 그렇게 더 이상 마를 수도 없이 바싹 말랐다.


빠지기는 빠지더라

장기하와 얼굴들의 '빠지기는 빠지더라' 노래를 처음 들은 날 망설임 없이 이불을 걷었다. '정신 나간 놈처럼 맨날 퍼마시며 몇 날 며칠을 지내니 빠지기는 빠지더라 빠빠빠빠 빠지기는 빠지더라'라는 가사의 노래다. 주어는 '너의 냄새가'.

'샴푸 냄새도 싹 향수 냄새도 싹 핸드크림 냄새도 싹싹싹' 경쾌한 노래에 맞춰 이불을 착착 걷어 넣어두고 건조대도 착착착 접어 정리했다.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냄새는 아직도 자꾸만 떠오른다

전 애인의 냄새가 직접적으로 생각난다기보다는 아무 의심 없이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있던 상황, 그때의 평온함, 충만한 행복감 같은 것이 멈출 새도 없이 연상된다. 이 후각과 추억의 연결이 끊어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망각이 필요하겠지. 그때쯤이면 매일 잠들고 일어나면서도 더 이상 불행함을 느끼지 않게 될까.


*표지 이미지 : <WHERE'S WALLY?>_MARTIN HAND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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