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전히 죽을 맛이지만
이별 3일째부터 계속 되뇌던 것.
1. 손에 있는 걸 놓아야 더 좋은 걸 쥘 수 있다.
2. 내가 너를 사랑할 만큼은 바보이긴 했지만, 다시 시작할 만큼의 바보는 아니야.
실연 후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은 뻔하지만 '시간이 약'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할 필요 없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믿으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말도 위안이 되었다. 슬프면 울고 생각나면 생각하고 그리우면 그리워하라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조금 더 괜찮아졌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 말대로 했다. 영화를 보고 덮어뒀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마음은 가는 대로 그냥 뒀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지만 오직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배신감 외로움 우울감 후회 그리움이 섞여 정말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어있었다.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적다
이별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찾는데 생각보다 그 수가 적음에 놀랐다. 그리고 대부분이 너무도 쉽게 다음 애인을 찾으며 끝난다. 상대의 외도에 의한 이별은 무엇보다도 신뢰를 깼다는 점에서 가장 충격적인 헤어짐이다. 그렇기에 다음 연애를 하기까지도 더 장애물이 많다.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술과 친구들과 몇 번의 눈물 외에도 수많은 위로와 고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 극복의 과정이 궁금해졌다.
외도, 그 후
과거에 애인이 바람을 피운 경험이 있는 친구가 <외도, 그 후>라는 책을 소개해줬다. 절판된 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이 책은 '결혼한 부부가 외도를 극복하고 다시 함께하는'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외도 그 후에 함께하는 경우와 헤어지는 경우를 책 한 권에 담는 것은 현명하지 못했던 처사다. 헤어진 나 같은 경우, 이 책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계속 '용서했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괴로워졌다. '외도를 겪은 부부는 때로 그 전보다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와 같은 표현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용서했어야 하는 걸까?
외도를 한 그를 용서했다면 그런 나를 내가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뢰는 연애에 있어서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외도 그 후 다시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용서하는 길도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미 난 그 자리에서 헤어지는 길을 택했으니까. 이 문제는 나중에, 내가 좀 더 괜찮아진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한 가지 분명한 건 외도의 증거를 발견한 그 자리에서 헤어짐을 결단하지 않았다면 결국은 그를 용서했을 거라는 점이다. '헤어지자'라고 말하지 않고 '시간을 갖자'라고 했다면 아마 다시는 헤어지자는 말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옳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대신 쓰기로 했어
궁금했던 건 시간이 대체 얼마나 지나야 이별과 배신의 아픔이 사라지는가였다.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사람이 쓴 일기 같은 것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별에 대한 글이나 책은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는 경우다. 차라리 그렇게 씁쓸한 이별이라면 그냥 버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마음이 뜨거울 때 상대의 외도를 발견한 경우, 대체 어떤 시간을 겪게 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나를 관찰하기로 했다. 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언제쯤 나아지는지, 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보다야 싸게 먹힐 것 같기도 했고.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데 그는 아니었을 때
어쨌든 나는 널 사랑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내는 법에 대하여.
*표지 이미지 : <WHERE'S WALLY?>_MARTIN HANDF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