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일을 하라고요 지금?
헤어진 뒤 괴로운 것은 몸이 아닌 마음.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이상 괴로움은 단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 자신의 머릿속 생각에서 도망칠 방법이란 없고, 술을 마시면 감정이 폭발해 더 마음이 아플 뿐이다. 고통을 피할 방법이 없으니 오직 시간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며칠 전으로 돌려서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했던 목가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시간을 한참 뒤로 돌려서 이 괴로움이 사라진 미래로 가거나.
둘 중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으니, 끙끙대며 이 시간을 걸어가는 수밖에.
친구들이 나를 건져 올렸다
전날부터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오겠다던 친구들을 불렀다. 사실 친구고 뭐고 혼자 퍼질러 누워 휴지곽을 안고 울고만 싶기도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다 털어놓고 욕을 해대고 싶기도 했다. 내가 잘한 게 맞는지 묻고 싶기도 했고, 너희들은 혹시 이게 납득이 가냐고 어깨를 잡고 탈탈 흔들고 싶기도.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친구들 앞에서 입을 열면서 동시에 눈물이 터졌다. 흑흑거리며 헤어졌다고, 걔가 나를 배신하고 바람을 피웠다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고백하고 나니 친구들도 눈이 빨개져 있었다. 그들이 나를 가엾이 여겨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 또 눈물이 났다. 눈물 콧물을 번갈아 쏟으며 이별의 전말은 다 털어놓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돌덩이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아팠다. 아무리 입 밖으로 끄집어내도 고통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들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말없이 방바닥에 누워있어 주고, 삼겹살과 소주를 같이 먹어줘서 간신히 눈물바다에서 건져 올려지긴 했다. 첫째 날보다 울음이 잦아들었고 이젠 슬픔과 분노의 비율이 너울대기 시작했다.
일상이 야속해
친구들이 집에 돌아간 뒤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가 깨서 또 울고, 홧김에 혼자 소주를 마시고, 이어서 맥주를 마시다가 결국 다음날 회사는 땡땡이를 쳤다. 도저히 출근 같은 걸 할 수가 없다. 일상을 계속 영위해야 한다는 게 야속하기까지 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고나들 일을 시키는 거니?
숙취와 슬픔 때문에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몸을 일으킬 수도 없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고 있다는 걸 누구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들의 단카에 답장을 하고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이별로 인해 이렇게 괴롭다는 걸 남들이 몰랐으면 했다. 아무렇지 않게 쿨하게 넘기고 있다고 믿어주기를 바랐다.
다이어트에 이별이 직빵이라는 건 진짜였어
밥맛에도 수치가 있다면 완벽한 0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먹으려면 또 먹긴 하는데, 혼자 있으면 몇 끼를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정말 배가 한 개도 고프지 않았다. 독한 감기에 걸려도 입맛 하나는 끈질긴 타입이었는데 지금은 끓이기도 씹기도 삼키기도 귀찮고 그저 멍 한 상태. 드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 '살은 좀 빠지겠군'이었다.
사소한 고민거리 :
인형 뽑기 실력을 자부하던 그가 두고 간 저 인형들은 어쩌지?(일단 잘 안 보이도록 반투명한 쓰레기봉투에 넣어둠)
*표지 이미지 : <WHERE'S WALLY?>_MARTIN HANDF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