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은 자연스럽게

ㅣ 동진이 변태 아니다!

by 느닷

언론 매체에서 학생들의 성과 관련된 이슈가 터질 때면 학교에 학부모님들의 문의가 이어진다.

"우리 학교는 성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아무리 큰 학교라도 보건교사는 단 1명. 보건 선생님은 고학년 위주로 성교육 수업을 들어가지만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다. 학부모님들은 도서관으로 시야를 돌렸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성교육 도서가 없는 것 같던데요. 좀 신경 써주시면 좋겠어요. "

"아… 없지는 않은데요…."


매년 성교육 도서를 들이고 있었지만 몇 권이 있는지 세어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성교육 도서의 현황을 살펴보니 50여 권이나 있었지만 서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정성 들여 검색하지 않는 이상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고심 끝에 ‘성교육 도서’코너를 새로 마련했다. 진심으로 성이 궁금한 아이들은 성교육 도서 대출을 무척 부끄러워 하기 때문에 아이들 시선에서는 구석이고, 대출반납 데스크에서는 아이들이 잘 보이는 출입문 맞은편 복도 한켠으로 위치를 정했다. 나름 아이가 구석진 곳에서 혼자 조용히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렇게 신중하게 코너를 마련했지만 처음에는 크게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그날은 유난히 소란스러운 점심시간이었다.

"선생님! 동진이가 야한 사진 검색했어요! 동진이 변태예요! 우리는 그런 거 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동진이가 자꾸 보라고 했어요!”

도서관 복도에 서있던 3학년 남학생 4, 5명이 동진이 등을 떠밀며 우르르 도서관으로 몰려들어와 사건 현장을 내게 일러바쳤다. 엄청난 일을 벌인 동진이가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담은 증언들이 쏟아졌다.

"동진이가 휴대폰 검색창에 '야한 사진, 고추, 여자 몸' 이런 거 검색해서 우리더러 억지로 보라고 시켰어요!"

키득거리는 아이, 놀란 아이, 소리지르는 아이들 틈에서 내가 얼른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틈에 남학생들의 소란은 순식간에 커졌다. 옆에서 보고 있던 여학생들은 소란을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동진이가 변태래!"

"왜?"

"몰라~"

동진이는 벌개진 얼굴로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증인이 너무 많았다. 동진이는 궁지에 몰렸고, 여학생들은 신이 났다. 이번 학기에 동진이의 별명이 '변태'로 굳어질 확률이 만 퍼센트로 치솟고 있었다.


어… 나는 순간 머리가 멍했다. 성과 관련된 문제로 학생들과 대면하는 일이 처음이었던 터라 사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옆에 서 있던 학부모 도서 도우미 역시 어떤 대답이 좋을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입만 바라보셨다. 그때 성교육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내일 점심 급식 메뉴가 뭔지 아는 사람? 없어? 선생님은 아까 그게 궁금해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했었는데. 뭐든 궁금하면 검색해 볼 수 있는거야. 동진이는 오늘 여자 몸이 궁금했었구나?"

동진이는 빨간 두 볼을 좌우로 흔들었다. 딱히 궁금했던 건 아닌데 다른 남학생들이 여자 고추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냐고 묻길래 검색해서 보여준 것 뿐이라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를 했다.

"선생님! 그래도 '변태'라는 말은 나쁜 말이잖아요~ 그런 말을 검색하는 건 나쁜 짓이에요!"

제보자들은 물러서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그래. 그건 나쁜 뜻을 가진 말이야. 그렇게 나쁜 말을 친구에게 붙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까 누구였더라~? 너희 중에 변태의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 있니?"

순간 조용해졌다.

"그럼 너희들 중에 여자 몸이 남자 몸과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있어? 없구나… 동진아 그래서 검색으로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찾았니? 딱히 없었어? 아이고~ 진작 선생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성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딱 맞는 책들을 모아놨거든! 자 다들 이리 와 봐. 오늘 말 나온 김에 한 권씩 읽고 가자. 정말 정리가 잘 되어있는 좋은 책들이 많아~ 너는 '안녕, 나의 사춘기' 너는 '이상한 곳에 털이 났어요' 너는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너는 ….“

우르르 서 있는 남학생들을 성교육 코너에 꾹꾹 눌러 앉히고 오늘 꼭 다 읽고 가라며 손에 성교육 책을 한 권씩 들려주었다.

"모르는 것을 검색하는 건 나쁘지 않아. 다만 친구가 싫다고 말했는데 억지로 보라고 강요한 행동은 나빴어. 동진아 다음부터는 친구에게 강요하지 말자! 그리고 성에 관해서는 인터넷보다 여기에 더 정확한 자료와 사진이 많으니까 꼼꼼히 읽고 궁금증 싹 해결하고 가자!"


소란스럽던 남학생들은 엉겁결에 손에 든 성교육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흩어졌고, 동진이도 곧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은 더 이상 동진이를 변태라고 부르지 않았다. 다행히 사건은 시들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시끌벅적하게 성교육 코너 개장식을 한 덕분에 그 뒤로 꼬마 손님들이 말없이 들러 두어권 진지하게 읽고 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친구들을 데려와 책을 소개해 주는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며 못 본체 해 준다. 대출 실적에 잡히지 않지만 이제는 은근히 인기 있는 코너가 되었다. 초등학교 도서관은 초등학생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스스로 찾는 연습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공간이자 가장 가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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