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초짜 흑역사
"선생님~ 아무리 봐도 책이 제자리에 없어요!"
그럴리가 없는데… 내가 좀 전에 분명히 거기 있는 걸 봤는데… 인기도서 '추리천재 엉덩이 탐정' 4권이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어디 보자… '추리천재 엉덩이 탐정' 4권을 간절히 찾는 1학년 아이와 그 아이를 도와주려는 학부모 도서 도우미, 그리고 초짜 사서까지 세명이 800 문학도서 5단 서가 앞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아래칸에 시선을 고정했다. 자잘한 청구기호에 온 정신을 집중한 채 서가를 훑다가 나는 그만… 방귀를 뀌었다! 맙소사! 도저히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요란한 소리가 조용한 도서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2초간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지 않았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서가를 짚어가던 학부모 도서 도우미의 손가락도 멈췄다. 눈치없는 1학년 아이만이 놀란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녀석은 마치 외계 생명체를 발견한 듯, 아니 과자봉지 속에서 예상 밖에 피카츄 스티커를 찾아낸 듯 흥미진진한 얼굴로 학부모 도서 도우미에게 질문했다.
"어? 방귀소리가 났는데요?"
그나마 나에게 질문하지 않은 것은 녀석의 작은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학부모 도서 도우미는 감사하게도 나를 감싸 주셨다.
"음~ 누구나 방귀를 뀔 수 있는 거야. 나도 아까 저기서 방귀 뀌었는걸~"
정말 감사한 말씀이라 나는 머쓱하게라도 웃고 싶었지만 아... 웃을 수 있는 냄새는 아니었다!
"하하하... 냄새도 나는데요?"
녀석은 어느새 '추리천재 엉덩이탐정' 4권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집요하게 질문했다.
"방귀를 꼈으니까 냄새도 나는 거지 이 녀석아~ 자! '추리천재 엉덩이탐정' 4권 여기 있다!"
근처에 있는데도 다들 찾지 못하는 책을 딱! 찾아냈을 때 사서만이 느끼는 짜릿한 쾌감과, 방귀의 부끄러움이 잘 버무려진 짬뽕 같은 기분을 끌어안고 나는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들은 더러운 걸 좋아한다. 아니 즐긴다. 초등학생이 되어도 그렇다. '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 '똥볶이 할멈',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이렇게 제목에 똥이나 엉덩이만 들어가도 눈을 반짝이며 펼쳐본다. 내용 중에 방귀나 똥 이야기가 맥락 없이 끼여 있어도 마냥 좋다고 깔깔거리며 읽고 또 읽는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나는 그날 1학년 아이에게 큰재미를 선물한 셈이다.
사실 화장실을 계속 못 가고 있었다.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아이들을 응대하느라 너무 바빴다. 언제 어떻게 요령껏 짬을 내야 하는지, 시간을 어떻게 쪼개어 써야 하는지 몰라 화장실 갈 타이밍도 잡지 못하던 쌩 초짜 시절이었다. 아침 8시 30분 출근과 동시에 온종일 낯선 업무들에 쩔쩔매며 긴장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무슨 수업종이 그렇게 수시로 치는지… 초등학교 수업시간 40분은 너무 짧다. 돌아서면 자꾸 종이 쳤다. 쉬는 시간 10분은 더 턱없이 짧다. 어느새 변비와 소화불량과 두통에 시달렸다. 그렇게 4계절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조금씩 업무가 눈에 보였다.
여전히 학교도서관은 쉴 새 없이 돌아가지만 나는 이제 커피도 한잔 마시고, 화장실도 잘 다녀오고, 아이들과 그림책 읽는 시간도 만들어 내는 경지에 다다랐다. ‘경지’라고 말하면 좀 웃기지만 화장실도 못 가던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분명 대단하다며 부러워했을 것이다. 초짜 사서의 흑역사 현장에 있던 녀석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시에 나와 방귀를 튼 사이가 된 학부모 도서 도우미는 작년까지 5년간 나와 함께 도서관을 지켜주셨다.
다시 봄. 새 학기에는 사방에서 새롭고 낯선 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허둥대는 새 학부모 도서 도우미, 정신없이 실수하는 새 도서부, 같은 말을 백번도 더 하게 만드는 신입생. 누구랄 것 없이 모두들 봄날의 어수선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괜찮다. 웃으며 지난 봄을 회상할 날이 다음 계절과 함께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