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금 반납함 열어 보세요

by 느닷

매일 아침 9시 40분이면 첫 쉬는시간 종이 울린다. 1교시를 마치고 주어지는 쉬는시간 10분. 그 귀한 시간에 용케 도서관을 찾아오는 어린 독서가들이 있다. 주 5일중에 주 10회는 도서관을 드나드는 1학년 민석이도 그 중 한명. 민석이는 오늘도 진지하다. 그림책 서가를 뚫어지게 훓어보던 녀석이 드디어 결심한 듯 한 권을 빼 들었다.

‘나들이 / 기무라유이치 / 미래엔아이세움’

양과 늑대라는 먹이사슬 관계에서도 사랑과 우정이 존재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가부와 메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와있는 7권짜리 인기 그림책 중에 두 번째 책인데, 지난주에 아이들에게 조금 읽어 주었던 1권 ‘폭풍우치는 밤에’를 용케 기억하고 있다가 2권을 찾아낸 것이다.

“선생님 이 책 빌려주세요.”

“그래~ 바코드 찍어 봅시다. 어? 민석이 오늘까지 반납해야 하는 책이 한 권 있는데 알아요? ‘용기를 내, 비닐장갑! / 유설화 / 책읽는곰’ 이 책 오늘 가져왔으면 반납하자~”

“어… 그런 책 안빌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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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 머릿속은 벌써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스쳐지나간다. 도서관에 자주 오는 김민석. 게 중 똘똘하고 야무진 김민석. 하지만 아직 대출/반납이라는 용어도 익숙치 않은 1학년 김민석. 민석이는 ‘용기를 내, 비닐장갑!’을 빌렸었지만 까먹은 것 일 수 있다. 어쩌면 자주 오다보니 헷갈려서 바코드 찍는 것을 깜빡하고 책수레에 무심히 올려 뒀을 수도 있다. 얼른 도서관 책수레와 서가를 살펴봐도 ‘용기를 내, 비닐장갑!’ 책이 없다. 정말 드문 일이지만 어쩌면, 내가 2학년 민석이가 빌리는 책을 1학년 민석이로 잘못 대출처리 했을 수 도 있다. 쉬는 시간은 끝나가고 민석이 눈에는 점점 억울함이 차올랐다.

“진짜 빌린적 없어요오!”

“아… 미안 미안. 일단 오늘 책 대출하구~ ‘용기…’ 그 책은 연장 해 둘 테니까 우리 같이 한번만 더 찾아보는건 어때요? 선생님이 도서관에서 더 찾아 볼게요. 민석이도 혹~시 헷갈렸을 수 있으니까 교실에서 한번만 찾아 봐 주세요. 만약 그래도 안나타나면 분실처리 합시다~”


이미 반납 했었다거나 빌려간 적이 없다는 귀신이 곡 할 노릇은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자주 헷갈려 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 책은 일반 가정집 서가에 꽂힌 책에 비해 사연이 많다. 전산에는 ‘대출가능’인데 서가에 없거나, 서가에 버젓이 꽂혀 있는데 ‘대출중’이거나, 누군가 아무데나 막 꽂아둔 덕에 도서관에 존재 하지만 존재를 찾을 수 없거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서가 귀퉁이에 숨겨두고 다람쥐의 도토리마냥 잊어버려서 ‘분실’되어 버리는 등. 인기도서 치고 사연없는 책이 없다.


한번은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던 학부모님이 빌려간 책이 분실되었다. 분명히! 사서 선생님이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온 비오던 날 확실히! 반납을 했었다는 것이다. 전산에는 ‘대출중’이고 도서관에는 책이 없었지만 학부모님의 기억은 선명했다. 세 번정도 반복해서 듣다보니 나도 지난주 비오던 날 학부모님을 뵌 것도 같다. 하루, 이틀 봐 온 분도 아니고 책 한권 가지고 거짓말 할 분도 아니다. 아마도 반납처리 할 때 실수로 바코드가 제대로 찍히지 않았고, 하필 그 책을 누군가 잘못 꽂아서 우리가 못찾는가 보다 생각하며 깔끔하게 ‘분실’처리를 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달뒤에 학부모님의 침대 아래에서 발견된 책이 심심한 사과와 함께 돌아왔다. 우린 그저 마주보며 허허허 웃었다. 어제 먹은 점심 반찬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세상을 살고있는 우리는 그렇게 동지의식을 느끼며 서로를 이해 했다.


누구는 반납했다고 하고, 서가에 책은 없고, 전산에는 대출중이고… 누구의 기억이 맞는 것인지 진실을 밝혀낼 뾰족한 수는 없다. 도서부 아이들은 “CCTV없어요?!” 라며 속 모르는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천만에 말씀. 초등학교 도서관은 CCTV까지 달아두고 감시를 해야 하는 엄중한 곳이 되어서도 안되며, 나는 그 CCTV를 되감아 보는 탐정이 될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책은 보존서가의 고문서가 아니라 소모품이다. 찟어지고, 헤지고, 잃어버렸다는 것은 누군가 그 책을 읽었다는 뜻이다. 책이 처음 도서관 서가에 꽂힐 때 목적했던 본분을 다 한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점심시간에 1학년 김민석이 도서관에 또 왔다. 민석이는 오전보다 더 진지한 얼굴이다.

“선생님, 복도에 있는 반납함은 언제 열어요?”

혹시 도서관 문이 잠겼을 때 반납하러 온 아이들이 헛걸음 하지 않도록 도서관 입구 쪽 복도에 ‘반납함’이 설치되어 있다. 나는 매일 출, 퇴근 시간에 반납함을 확인하곤 한다.

“아침에 반납함 확인했지~. 지금은 바빠서…. 참! 교실에서 ‘용기…’ 그 책 찾아 봤어요?”

“어… 저는 ‘용기…’ 그 책 안빌렸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지금 반납함 열어 보세요. 지금요. 지금 열어보면 안되요?”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책을 빌리러 온 아이들이 대출/반납대 앞에 줄줄이 서 있건만, 눈치없는 민석이는 계속 몸을 배배 꼬아가며 졸랐다. 아 이녀석이 대체 왜 안하던 소리를 하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다급히 뛰어 왔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하다. 얼굴은 심각하다 못해 곤란해 죽겠다고 씌여있었다. 아하! 눈치는 내가 없었구나! 나는 줄서있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반납함으로 뛰어갔다. 예상대로 반납함 안에는 ‘용기…’그 책이 얌전히 누워있었다. 뒤따라온 민석이가 활짝 웃으며 뻔뻔한 표정으로 내게 다짐받듯 말한다.

“이것보세요~ 저는 ‘용기…’ 그 책 안빌렸다니까요~.”그래. 책이 제 소임을 다 하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되었다. 민석이의 정성어린 연기에 나는 또 허허허 웃고 말았다. 언젠가 민석이에게도 허허 웃으며 실수를 인정할 용기가 생기길 응원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크게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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