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00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나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01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것들
03 돈 버는 것 빼고 다 해보기
04 1년만 살아보자
05 걷기를 시작하다
06 계단을 오르다
07 공부를 시작하다
08 스쿼트를 시작하다
09 운동하고 싶어지는 그림을 그리다
에필로그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나의 성장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내 관심 밖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가리키며 외골수라 했다. 나는 내가 외골수인지 몰랐는데, 나 같은 사람이 바로 외골수였다. 그랬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자마자 어떻게든 스스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스스로를 잘 먹였고, 잘 재웠고, 잘 입히며 버텼다.
청소년 시절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는 사연이 있어 지식이 짧았고, 성인이 되어 없는 지식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쩔쩔맸다. 공부라는 것을 어찌할 줄 몰라 괴로웠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책을 읽으며 버텼다.
그렇게 나의 본바탕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필요하면 찾아다녔고, 찾아서 만들어냈다. 나는 스스로를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고 가꾸고 성장시키는 것에만 온통 할애했다. 그렇게 버티는 삶도 어느 순간 멈췄고, 성장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왔다.
다듬고 성장하는 것 말고 뭐가 재미있는지 몰랐다. 몰라서 답답했고, 답답한 마음을 풀 데가 없어서 글을 써서 남기기도 했다.
일찍 일어났는데 할 일이 없는 것은 마음이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고통은 나의 쓸모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따르는 생각들은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하찮게 대할 만큼 무서운 것으로 변했다. 나는 그 생각들이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치 집 안에 무서운 괴물을 놔두고 도망치듯이 조급하게 허둥거리며 나와버렸다.
막상 나오긴 했지만 갈 데가 없었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해서 지하철역과 집을 오가는 길 외에는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고 했지만 얼마만큼 가야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까닭 없이 염려스러웠다. 새로운 길을 가본다는 불안한 마음과 동시에 새로운 것들은 모두 신기하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마음이 반은 즐거웠고, 반은 불안했다.
여름이 오기 직전의 계절은 걷기에 너무나 환상적인 날이었다. 날씨 덕분에 좋아진 기분 덕분에 하늘과 바닥과 양옆을 살피며 눈길 닿는 대로 보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데, 걸으면 걸을수록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이렇게 신기하게 생긴 나무가 있다니, 이런 곳에 꽃이 피다니'하며 잇따른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불안은 어느새 사라졌고 즐거워졌다. 나 이외의 저절로 우러난 자연의 존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폭주하듯 나를 가꾸기 데만 기를 쓰고 살았는데, 풀과 나무와 꽃들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웠다.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 풀과 나무와 꽃 그리고 내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