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고싶어지는그림을 그리다

그림을 그리다니

by 지구대장

목 차

프롤로그

00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나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01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것들

02 비로소 보이는 것들

03 돈 버는 것 빼고 다 해보기

04 1년만 살아보자

05 걷기를 시작하다

06 계단을 오르다

07 공부를 시작하다

08 스쿼트를 시작하다

09 운동하고 싶어지는 그림을 그리다

에필로그



운동하고 싶어지는 그림을 그리다


그림 그리기로 다짐했다. 그리는 일을 다짐까지 해야 할 정도로 나는 그림 그리는 삶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10대 시절과 21살까지의 나는 매일 그림 그리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그림 그리기와 멀어진 이유는 좀스럽다.


삼수까지 해가며 그림으로 대학을 가려했으나 실패했다. 패배감은 짙었다. 사회인이 돼서도 그때의 패배감을 계속 느끼며 살아갔는데, 더 열심히 하지 못한 스스로를 죽도록 괴롭히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실패의 원인을 찾기보다 무한히 원망하고 싶었고, 그대상은 ‘나’였다. ‘열심히 해봤자 결국 나는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이 내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생각은 내 존재를 계속해서 쪼그라들게 하는 씨앗이 되었다. 무엇을 시도해도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쪼그라져 버린 나는 이전의 당찬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극복할 수 없어서 피하게 됐다. ‘그리는 게 지긋지긋하다’는 알량한 핑계를 대면서. ‘다시는 그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할 정도로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살다가 10여 년 만에 다시 그림 그리기로 다짐했다. 그리는 일이 갑자기 즐거운 일이 되었다는 반전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나는 ‘퇴사’로 인해 또다시 ‘패배감’을 느낀 것이었다. 쫓겨났다는 기분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공들이고 있던 커리어가 다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고, 갑작스러운 통보로 인해 상실감이 컸다. 극복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나의 선택은 상황을 피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회사원으로서의 삶' 이전에 있던 '그림 그리는 삶'이 가장 가까운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나를 채우기 위한 행위로 그림 그리리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무슨 그림을 그릴지 막막해서 일단 나를 그리기로 했다. 인체를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사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만만한 나를 그리기로 한 것이다. 레깅스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이 재밌어 보여서 우연히 그리게 됐는데, 그 그림을 보면서 즐거워해 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을 붙잡고 싶어 졌다. 계속 그린다면 이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그려야 했다. 꾸준히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은 정기적인 연재를 하는 것이었다. 진입 장벽이 없는 밴드 페이지에서, 기간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했다.


누가 내 페이지를 구독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누구라도 내 그림을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잘 그리는 날도, 못 그리는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겨서 아무렇게나 그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계속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인생의 숙제를 드디어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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