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트 280개
00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나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쿼트를 매일 하면서 횟수를 조금씩 늘렸다. 횟수를 갱신할 때마다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하얗게 쌓인 눈밭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져 있고, 그곳에 한 걸음씩 발자국을 남기는 장면이었다. 어떤 이유로 그 장면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걷다 보니, 계단을 올랐고, 계단을 오르다 보니, 놓았던 공부를 시작했고, 이제는 스쿼트를 한답시고 설치고 있었다.
스쿼트를 마지막으로 해본 것은 헬스장이었다. 내가 헬스장을 다닌 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 헬스장에서 PT를 받았는데, 그때 스쿼트를 꽤 잘한다고 칭찬받은 기억이 났다.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 그 후로 종종 스쿼트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실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버킷리스트를 적으라고 했다면 그중 하나에 분명 스쿼트를 적었을 것이다. 그만큼 스쿼트는 내 마음속에 늘 있었다.
뜬금없게도 갑자기 스쿼트를 시작했다. 사실 스쿼트를 시작한 것은 내가 그린 그림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스쿼트를 시작했다는 게 어딘가 이어지지 않고 어리둥절한 이야기 같겠지만 정말로 그랬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다른 포즈로 그리고 싶어 졌다. 무슨 포즈를 취해볼까, 하는 동시에 나는 스쿼트 자세를 취했다. 내 마음속에 늘 있었던 스쿼트의 시작이었다.
거울 앞에서 2개만 했는데도 허벅다리가 저릿하고 허리에 자극이 왔다. 얼굴은 벌게졌다. 2개 하고 잠시 서 있었는데, 다시 그 자극을 느끼고 싶어 졌다. 엉덩이를 쭉 내밀고 무릎이 발끝을 나가지 않는 자세를 취하면서 거울을 봤다. 우스꽝스러웠다. 이렇게 우스운 포즈를 취한 나를 누군가 함께 보면서 즐겁게 웃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스쿼트를 할 때 느껴지는 자극은 연포당에 들어간 깔끔한 청양고추 맛 같았다. 매운데 자꾸 먹고 싶어 지는 자극.
너무 오랜만에 하는 스쿼트라 능숙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자꾸만 해보고 싶어 졌다. 다리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서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누가 내 등허리에 올라탔나 싶을 정도로 몸이 무거워졌다. 무거운 몸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마다 이를 악 물게 되면서 호흡을 멈추게 되었다. 그럴수록 얼굴은 또 시뻘게졌다.
10개도 하기 힘든데 100개씩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유튜브를 보고, 블로그를 찾아보고 바른 자세로 스쿼트를 하는 방법에 대해 혼자 연구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자주 보는 일이 많이 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꼴불견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스쿼트를 바른 자세로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잘하고 싶어서 누구보다도 잘하고 싶어서 스쿼트를 잘하면 뿌듯했다. 하루에 하나씩 횟수를 늘리면서 매일 도전해보고 싶어 졌다. 공개한다면 매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못했을 때 부끄러워질 것 같기도 해서 고민이 시작됐다. 매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처음 스쿼트 개수를 150개를 넘긴 날 적은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스쿼트 151개를 할 때, 다시
내 머릿속에서
내 눈 속에서
새하얗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떠올리며
한 걸음씩 내딛는 상상을 했다.
어제와 같은 개수대로 150개까지만 할까
갈등됐지만 150개를 해내는 순간
155개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100개 이상을 매일 한다고 해서
100개가 힘들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매일의 100개가 힘들고 고되지만
그 힘듦을 넘어서게 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미루고 미루다 하는 스쿼트였지만
잘 해내었다.
해낸 적 없는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였을까. 상상 속 눈밭을 들락거리며 스쿼트를 280개까지 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