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목현상은 언제나 답답함과 짜증으로 시작해 신비로 끝났다
운전하다 병목현상 구간에 이르면 정상 속도로 달리지 못해
1분이 10분처럼 길게 느껴지고 관념 속의 시간은 흐를수록
아주 더딘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짜증이 폭발할 즈음, 갑자기 앞에 잇던 차들이 사라지고,
다시금 달리기 시작하는 신비로운 순간이 온다.
긴 시간을 멈추어 있었던 것 같은데
팩트를 체크해 보면 생각 외로 짧은 시간이었다.
답답함과 지루함이 시간을 더 길게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자주 연락하던 지인이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두절되거나
연락은 주고받지만 만나는 횟수는 현저히 줄 거나하면
처음엔 상대방이 바빠서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 후
나도 연락하지 않고 살았었다.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모이는 모임의 날자가 정해져서
단톡방에 날자와 장소가 공지되었는데,
모임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없는 동생에게 잔화를 할 명분이 생겨
오랜만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동생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그가 하는 말의 내용이 무거웠다.
소식을 주고받지 못한 기간이 1년이 조금 넘었었는데,
그 기간이 그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음을 오늘 알았다.
연배가 한참 어린 친구인데 언제나 다정하게 누나라고 부르기에
모임의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가깝게 느끼는 동생이었다.
지나가는 소리로 누군가가
그 동생이 시술을 받았다고 전해 들은 기억은 있었던 것 같다.
시술과 수술은 엄청난 차이가 느껴지는 단어다.
대수롭지 않은, 아주 간단한 시술로 생각했었기에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지나쳤었다.
<흉선의 악성 신생물>, <중증근무력증>,
내 귀에는 아주 생소한 병명의 암을 진단받고 수술하고
현재는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는 가슴이 턱 막힐 듯 충격이었다.
그런데 통화하면서 나는 충격받은 티를 내지 않았다.
영상통화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앉아서 전화하다 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었다>
내가 동요하면 왠지 그 동생이 자신의 상황을 더 엄중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느끼고 흔들릴까 봐,
마음이 더 불안해서 몸이 더 나빠질까 봐 놀랐다는 티를 낼 수 없었다.
덤덤하게, 그럴 수도 있지.
암 2기 정도는 오히려 일찍 발견되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금세 지나갈 아는 병이라고 응대했다.
전화를 끊은 후 반성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지인들에게 자주 안부를 묻지 않았었던 행동에 대한 반성이다.
자주 안부를 묻지 않는 이유를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니까 안부 인사가 어쩌면 상대방의 일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나름의 배려였는데,
아닌 듯하다.
잘못 생각한 듯하다. 비록 내가 상대방의 삶에 큰 보탬이 되는 존재는 아니더라도
이제부터 먼저 안부를 묻는 습관을 길러야겠다는 생각?
오늘의 반성이 일회적인 반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긴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말로 불가피한 정체된 상황들이 있다.
물을 뺀 바닥이 금방 보이도록 모든 원칙의 방향을 한숨에,
그리고 한꺼번에 돌리고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긴장은 피해야 하고, <중략>”
-하린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발췌
운전하다, <병목현상>을 경험한 적이 자주 있었다.
자주 경험해도 경험할 때마다 신기했다.
그 많던 차들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
시속 10km도 속력을 내지 못하던 구간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그 도로에서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인 80Km까지 달리면서 잠시 환각 증세 비슷한 걸 느낀다.
그런 것처럼,
삶에서 <병목현상> 구간은 30대 중후반부터 40대 중후반부인 듯하다.
내가 살아온 삶이나 주변인들의 삶을 봤을 때
그 기간에 이상한 우여곡절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구구절절 표현할 일도 때론 있겠지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충, 간소하게 마음 표현을 하는 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살펴봤다.
내 삶의 병목현상 구간 때부터였던 듯하다. 그 시기에는 대화가 시작되거나,
기회가 생기면, 하소연을 늘어놓게 되다 보니,
만남이 끝난 후 혼자 남게 되면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곤 했었다.
쏟아낸 만큼의 허탈이 차올랐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하는 일을 줄이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제어하는 버릇이 습관으로 굳었다.
오늘 통화한 동생과의 대화에서도 마음의 말을 모두 꺼내지 못한 것은
습관이 가로막은 탓이 8할이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거대한 손은 좍 펼치면 30cm에 이르는데,
이것은 피아노 위에서 1.5옥타브에 해당하는 길이이다.
이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인대를 찢어놓을 수 있는 곡을 작곡하고 연주할 수 있었다.
반면에 로베르트 슈만은 국소성 근긴장 때문에 <근육이 부족해서 오른쪽 중지를 마음대로 구부리거나 홱 잡아당길 수 없었다> 콘서트 피아니스트 경력을 그만두어야 했다. <중략>
하지만 병들고 허약한 음악가들이 족적을 남긴 긴 영광의 역사에서
19세기에 활동한 거장 니콜로 파가니니의 DNA보다 친구인 동시에 모호한 적으로
가장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준 DNA는 없었다.
오페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는 자신이 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길 무척 싫어했지만,
자신이 울었다고 실토한 세 번 중 한 번이 바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을 때였다.
그때 로시니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끄럽게 울어댔는데,
그 볼품없는 이탈리아인에게 넋이 빠진 사람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
- 샘 킨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에서 발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문장은 위에 발췌한 문장처럼,
타고난 유전자 DNA로 기형이라 부를 수 있는,
남과 다른 조건을 부정하지 않고 최대한 잘 활용하고 즐긴 결과 최고점을 찍은 음악가들의 삶,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바뀌는 결과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도로에서 경험하는 <병목현상>이 어쩌면 인생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일까?
똑똑해도, 바보여도, 부자여도, 가난해도 피해 갈 수 없는 일.
누구라도 예측할 수 없어서, 무방비상태로 당해야 하는 일들.
어느 날 갑자기 의도치 않게 발생하고, 즐거움이나 웃음이 사라지는 시기가 있는데,
이런 종류의 시기가 혹시 삶의 병목현상 아닐까?
그 시기만 지혜롭게 견디면 기다리지 않아도 기쁨과 행복으로 환한 세상과 만난다.
애써 외면해야 할 일은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고, 일이고, 상황이다.
치유의 방향은 습관을 고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될 듯하긴 한데,
습관을 고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니......
<다만 아픔에서 구하소서>
소중한 동생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