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하_#2016년 4월
광화문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일이 잦았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보행 신호에 따라 나, 그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광화문 사거리를 자주 걷던 어느 날부터 나는 가끔 나의 걸음이 익숙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걸었던가. 허공에 떠다니는 말들을 내뱉을 때도 마찬가지다. 논리로 무장한 적확한 문장일지라도 나의 말이 때론 내게 어색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말하게 됐을까.
성숙과 완벽이 미덕인 우리의 시공간에서 적응을 완료(적어도 수료)한 우리에게 영화 ‘Frances Ha’는 무던한 질문을 던진다. 저 어수룩하고 성가시며 때론 창피하기까지 한 프란시스를 비웃을 수 있는가.
얼핏보면 프랑스풍의 키치(kitsch)한 모노 드라마가 연상되지만, 정작 배경은 다행히 뉴욕이다.(파리가 배경인 영화는 이제 지겹지 않나.) 영화는 브룩클린의 낡은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프란시스(그레타 거윅粉)와 소피(미키 섬너粉)의 일상을 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프란시스는 무용 연습단원, 소피는 출판사에 다닌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어엿한 27살 여인이지만, 정작 열네살 소녀 티를 못벗은 듯 하다. 둘은 늘 거리를 뛰어다니며, 머리를 쥐어 뜯고, 공상을 늘어 놓는다.
소피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프란시스보다 먼저 철이 든다. 프란시스만 남겨진 셈이다. 영화는 우리가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할만한 사건들을 갈등 상황으로 제시하지만, 프란시스는 무른 복숭아마냥 이리저리 채이다 생채기가 난다.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부터 남자를 만나는 일까지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프란시스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가 공통으로 의식하는 '그 무엇'을 감지하지만, 정체를 알지 못한다. 떳떳한 직장과 이성친구를 가진 여러 커플과의 식사자리에서 에티켓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 프란시스는 영락없이 나이든 말괄량이다. 그 무엇은 별 것 아닌 상식과 규칙일 따름이지만.
프란시스는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사회인으로 생활하기 위해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 맞춰보기도 하고, 자신의 근거지에서 도망가보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건 ‘어른아이’라고 불릴 만한 프란시스지만, 좌충우돌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본연의 밝고 단순한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저만의 속도를 잃지 않은 탓이리라.
‘Frances Ha’는 흑백으로 촬영됐다. 스마트폰에 빠져사는 지금이 배경이지만, 모노톤의 흑백 스크린은 이 영화 속 프란시스와 소피의 시간을 영원한 어느 과거처럼 느껴지게 한다. 흑백은 대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데, 그 때문인지 영화는 상영 내내 은은하고 애련한 정취를 남긴다.
흑백 스크린과 절묘하게 대응하는 것은 프란시스의 춤이다. 섬세하고 절묘하진 않아도 프란시스의 동작이 이뤄내는 춤은 격정적인 사건이 부재한 스크린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어수룩한 프란시스에 우리는 줄곧 동정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프란시스는 두뇌가 번뜩 트일 정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기도 한다. 특히 관계에 대한 프란시스의 말은 낯선 만큼 그대로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프란시스는 말한다. 한 사람과 한 사람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차원이 생성된다고. 그 차원은 오직 그 두 사람만의 것이고.
영화 말미, 프란시스와 소피는 서로 바라본다. 단지 바라볼 뿐인데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