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몰라도, 네가 누구든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_#2016년 11월

by 토토

당신은 나를 (잘) 안다.

나는 당신을 (잘) 안다.


두 문장의 '안다'는 의미상 극단에 있다. '당신은 나를 안다'에는 헤아림, 즉 이해받은 이의 감정이 녹아 있고, '나는 당신을 안다'의 '앎'은 나의 독단적인 파악이 서려있다. 이해는 상호적이고 또 복합적이지만, 파악은 일방적이고 단편적이다. 이해와 파악은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파악하면 양자 간에 파열음이 나기 마련이다. 제멋대로의 속단과 오해에서 의심이 부풀고, 의심은 분노와 다툼, 끝내 환멸을 이끌곤 한다.

홍상수 감독의 열여덟 번째 장편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영수(김주혁)가 연인 민정(이유영)을 대하는 방식이 그렇다. 영수는 '민정이가 (너 모르게) 술을 마시고 돌아다닌다'는 소문만 듣고 민정을 타박한다. "내가 널 몰라? 왜 거짓말을 해". 민정의 항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민정은 영수와 약속을 했다. 소주 5잔, 맥주 2병. 그 이상은 마시지 않기로 했다. 이 약속을 제안한 사람은 영수일 것이다. 연인 관계의 남녀는 상대방의 여러 행동에 제한을 두곤 하니까. 하지만 영수의 이 같은 방식은 민정의 근간을 흔드는 듯하다. 아마도 '약속'이란 말로 포장된 영수의 구속에 호흡곤란을 느끼듯, 민정은 말한다. "우리 이제 약속 같은 거 하지 말아요. 약속, 그런 것 때문에 더 싸우게 되는 것 같아". 둘은 잠시 시간을 갖기로 한다.

사실 여기까지, 이런 류의 다툼은 우리의 일상, 연애사에서 진부하리 만큼 자주 벌어진다. 특히 영수는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등장하는 남자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찌질남'의 면모를 가장 평면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내기에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도입부는 어숫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또 이런 식의 전개인 걸까.


카메라는 이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민정을 비춘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하다. 재영(권해효)이는 민정을 보고 민정이라 부르며 아는 척을 하지만, 민정은 자신은 민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상원(유준상)이 그녀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민정과 쌍둥이 동생이라 말할 때도 있고, 아예 민정을 모른다고 잡아뗄 때도 있다. 이때부터 '그녀'는 민정이지만 거짓말을 하는 민정일수도 있고, 정말 그녀 말대로 민정의 쌍둥이 동생이거나 제3의 그녀일 수도 있기에 현실에 조그만 균열이 생긴다. (그녀가 재영과 상원을 각각 마주할 때, 그녀 앞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이 수록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놓여 있다.)

그녀가 민정이 아니라면, 민정은 어디로 간 걸까. 영수는 자신과 민정이 사는 연남동을 배회하며 민정을 찾지만, 쉽지가 않다. 민정은 사라지고 '그녀'만 남은 연남동에서, 그녀는 술을 마신다.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거 아니냐"는 그녀의 얼굴에는 꽃이 피기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한다. 영화 도입부, 민정의 조심스러운 존댓말과 여린 목소리는 온데간데 사라진 채, 우리는 조금씩 민정을 잊고 자꾸만 정체가 바뀌는, 아니 새로운 그녀를 만나게 된다.


영화는 민정의 부재에 민정이라는 사람, 그 사람에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간절하게 깨달은 영수와 영수가 민정이라 착각할 수밖에 없는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기적 같은 장면을 선사한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밤, 한 차례 소나기가 훑고 간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서 영수와 그녀의 대화는 우리가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 온 '안다'와 '모른다'의 차이를 부수고, 영문 없이 흘러넘치는 상대방에 대한 간절한 애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누구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의 사랑이 가능한가. 여기에 영화평론가 정한석은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앎과 사랑을 동일화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대답한다. 애초 내가 당신에게 반하고, 당신이 내게 감정을 갖는 것에 대해 설명이 가능한가. 눈 앞에 선 연인에게 사랑의 근거를 찾을 수 있나.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 입이 열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대한 정보의 총량이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고, 함께 한 시간이 사랑의 깊이와 무관하듯, 사랑은 불가역적이다. 홍상수의 이번 장편은 전작들과 달리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우리 또한 영수의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깝게 오랜 시간 지낼수록, 애정과 증오가 초단위로 널뛰는 연인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로 조금씩 알아가기로 하자'고 시작했던 연인들은 서로 '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다다르면서 상대방의 사고와 행동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한다. 그런(지금도 그러한) 나와 혹자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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