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궤적, 충돌, 그리고 하나의 사건

CAROL_#2016년 2월

by 토토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와 내가 만난 건 한 세계와 어떤 세계의 충돌이라고. 서로 다른 시공간이 나라는 존재, 나의 몸을 통해 한때는 무성하게, 한때는 황폐하게 자라나다, 우연한 궤적 속에서 부딪친 거라고. 일종의 사고(accident)라고. 우리는 그 어색한 사고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른 거라고.


하지만 익숙하지 못한 말과 눈빛으로, 서로의 안위를 묻고 답하다, 때론 너와 나를 이루는 몸이 한 데 섞여 혼탁해져 버리더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벌어진 이 사고가 우리 각자에게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 잡고 또 잊히는 시간을, 사랑이라 부르자고. 말했다.

우리는 오랜 전 미결로 남은 사건이 적힌 수첩을 때때로 들춰보며 사랑이라 적힌 이름표를 만지작거린다. 문득 테레즈(루니 마라 粉)의 작고 가는 손끝과 캐롤(케이트 블란쳇 粉)의 섬세한 입꼬리가 떠오른다. 영화 <캐롤>은 당신과 내가 겪었던 어느 섬광 같던 순간을 1950년대 미국 맨해튼의 한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재현한다.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테레즈는 섬세하게 제작된 고가의 장난감 기차 세트에 관심을 보이는 캐롤을 목격한다. 그 순간 캐롤 역시 자신에게 시선을 쏟는 테레즈를 목격하면서 두 사람은 아주 잠시 둘 만의 시공간을 경험한다. 캐롤은 테레즈에게 장난감에 대한 질문을, 테레즈는 캐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만, 어쩐지 그 둘의 대화는 서로 간의 어색한 귓속말처럼 낯설고 또 애정 어리다.

테레즈와 캐롤 사이에 움튼 이름 모를 이끌림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구체화된다. 각자의 배경과 처한 상황은 현격하게 차이나지만, 둘 사이의 부정교합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우선시되면서 그들의 방식으로 맞물리며 작동한다. 캐롤에 대한 테레즈의 마음이 호기심이든, 동경이든, 또 다른 무엇으로 이름 붙이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중요한 건 테레즈와 캐롤 모두 함께 있길 원했다는 것.


하지만 캐롤에게 덧씌워진 아내라는 역할과 아이에 대한 모성은 오로지 테레즈와 연결됐던 시공간을 침범하고, 깨부순다.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도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캐롤과, 캐롤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자신만의 문법에 따라 캐롤을 규정하고 강압하는 남편 하지 에어드(카일 챈들러 粉).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테레즈는 접근 불가능한 '어른들의 세계'의 경계에 서서 몸을 떨며, 눈을 끔뻑거린다.

<캐롤>에서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인 남편 하지와 테레즈의 연인이었던 리처드(제이크 레이시 粉)는 각각의 상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사랑을 거절당한 시점에선 캐롤과 테레즈에게 하나같이 자신이 논리적이며, 지극히 상식적이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법과 규정의 이전, 상식의 미명 아래 개인의 감정과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의 방식은 교활하기보단 우둔하게 보인다. 1950년대가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하던 시대라는 것을 반영한 연출로 보이지만, 반대로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 우둔한 폭력성이 지금까지 수차례 위장을 거듭하며 여전히 유효하단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캐롤은 자신을 옥죄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테레즈에게 미국 서부 여행을 제안한다. 광활하지만 황량한 대지, 그곳을 가르는 빈티지 카, 사막의 호텔과 첫 번째 동침. 까무러칠 환희와 끝 모를 슬픔이 맞닿은 듯한 캐롤과 테레즈의 여행은 어느 시한부의 모습처럼 위태롭지만 그만큼 아름답게 빛난다.


영화는 캐롤과 테레즈의 이별, 혹은 재회, 또 다른 각자의 만남을 재단하지 않는다. 형형하게 빛나는 캐롤과 테레즈의 표정들이 김서린 뿌연 창과 어둠 속에서 부유한다. 그들 각자에게 서로가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 잡고 또 잊히는 시간을, 우리는 뭐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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