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 혹은 두덩정강근

소리없는 존재의 아우성

by Dahl Lee달리

박근은 존재감이 미미한 근육이다. 얼마나 존재감이 미미하냐면, 항문 괄약근, 안면이나 손 등에 재건시술을 할 때 이 박근을 떼어내서 사용하곤 한다. 없어도 타격이 크지 않고(다른 근육들이 보상작용을 잘 일으킨다), 길고 얇으며, 꽤나 표층부에 있어 떼어내기도 쉽기에 미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부위의 재건에 쓰이는 것이다.


박근. '박'은 한자어로 얇다는 뜻이다. 박리, 박편, 부박하다 할 때 그 박이다. 라틴어로는 musculus gracillis(영어로는 gracilis muscle), 발음은 머스큘러스 그라실리스(아는척을 위해 이런 발음은 항상 알아놓는 것이 좋다). 라틴어로 그라실리스는 얇다는 뜻이니 얇고 긴 모양이 이 근육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얼마나 기냐면, 박근은 우리몸에서 두번째로 긴 근육이다. (첫번째는 제기차기 근육이라고 불리는 봉공근이다.)


박근을 이용한 질 재건술.

의학용어들이 한자어에서 순우리말로 바뀌는 과정에서, 박근의 이름은 '두덩정강근'으로 바뀌었다. 치골(두덩뼈)에서 시작되어 경골(정강이뼈)에까지 이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우리 몸에서 치골에서 경골에 이르는 근육은 박근이 유일하기에 합리적인 네이밍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딘가 아쉽다. 박근의 정체성은 길고 얇은데 있는데 말이다.


이 근육의 기능을 살펴보려면 해부학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된다. 근육의 시작지점은 치골(두덩뼈). 종착지는 정강이 뼈 내측 상단이다.

참 길고 얇다.


고관절 내전, 굴곡

무릎 굴곡, 내회전(보조)



내전, 굴곡, 내회전 등의 용어가 어렵다면, 박근이 수축되는(짧아지는) 이미지를 이렇게 상상해 보자. 근육이 길이 변화는 관절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을 유념하자.


치골에서 시작된 끈이

아래로 감기며 짧아질수록

골반은 안으로 접히고,

허벅지는 모이며,

무릎 안쪽은 조여든다.



그런데 고관절을 내전하는 근육의 경우, 대내전근, 장내전근, 단내전근, 치골근, 외폐쇄근 등 이미 많고 크기도 크다.

무릎의 굴곡은 햄스트링이, 내회전은 역시 햄스트링의 일부인 반막양근, 반건양근의 개입이 더 크기에 보조적 역할에 머무른다. 참으로, 잃어도 티가 거의 안 나는 근육인 것이다. (하지만 미세 조절을 하는 근육들은 작지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우리 몸의 손상을 줄인다. 인간사회에서도 이런 있으나 마나 해보이는 인간들이 의외로 공동체를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


이런 있어도 없어도 되는 존재를 가장 크게 느낄 때는 언제일까?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없지만, 횡으로 다리 찢기를 할 때이다.

다리를 옆으로 찢는 자세, 일명 '박쥐 자세'라고도 부르는 자세를 취할 때 무릎 안쪽에서 팽팽하고 가는 통증을 느낀다면 박근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지금 당장 다리를 옆으로 쫙 찢어보자. 이때 엉덩이는 가능한 하늘로 치켜세운다. (골반을 전방회전 시키면 내전근군이 더 잘 늘어난다)

그토록 가늘고 미미한 존재가 얼마나 큰 비명을 지를 수 있는지, 느껴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아, 너 , 거기 있었구나.

박쥐 자세. 손은 앞쪽 바닥을 짚어 좀 더 상체를 숙여 보는것도 좋다.


마음챙김, 자신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이 유행이다. 마음 뿐 아니라 우리 몸도 조금 더 세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내 몸을 잘 알게 되면, 몸과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평생 존재하는 줄도 몰랐지만, 소리 없이 숨어 일했던 작은 근육부터.

그리고, 꼭 이름을 불러 주자. 이름을 부르는데서, 관계는 시작되니까. 오늘도 거기서 안녕하십니까. 박근씨. 혹은 두덩정강근씨.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