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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Jun 03. 2021

영감? 우린 일하러 간다.

그래도 작고 소중한 아마추어의 영감

나는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은 잘 옮겨 적는 편이지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작년 여름,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부터이다. 제주도를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내 안에 걱정이나 불안이라는 감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주도에 도착하고부터는 정말 매일이 행복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좋은 시간들이 나를 행복으로 가득 채웠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남기고 싶었고 자연스레 펜을 들었다.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넘칠 정도로 감사하고 행복한 감정을 바라보다 보면 짧은 글이 툭하고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영감인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래 노력을 해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이 잘 안 써지고 고민은 깊어졌다. 툭하고 나왔던 지난 순간을 떠올리며 아는 길이라도 관찰하며 걷기, 다른 길로 돌아가 보기 등 어디서 들어본 것들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책을 필사하는 것, 어떻게 먹고살까를 고민하는 것 외에는 생각노트에 적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첫서재에서 띵하고 깨닫게 되는 문장을 만났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에브리맨'이라는 책 속 문장인데 첫서재의 작가님이 공유해주셨다.  '이 삭막한 도시에는 나에게 영감으로 다가오는 게 없어.' 이렇게 영감 탓만 하며 영감을 찾았던 나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고 너무나 필요한 말이었다. 언제까지 영감만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무엇을 영감이라고 하며 찾으러 다닐 것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아마추어였다. 전문 작가들의 글도 마법처럼 뚝딱하고 나오는 게 아닐 텐데 영감을 찾아 헤맨 내가 너무 어리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이상 미루거나 탓하지 않고 어떤 글이든 써 내려가자고. 첫서재의 작가님이 작년에 가장 잘한 일을 묻는다면 글을 꾸준히 쓴 것이라고 하셨다. 매주 일요일,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나가는 모습이 전문가 그리고 어른 같아 보였다. 그래서 지금 나도 이렇게 글을 쓴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번 주에는 무슨 일이 생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내본다. 일주일에 최소 한 편씩 일 년을 꼬박 채우면 48편. 어쩌면 그것들로 재미있는 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아마추어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글이 폭발적으로 써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만 하더라도 점심을 사러 나가는 잠깐 사이에 떠오른 소재 중의 하나이고 이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사 온 점심도 미뤄가며 글을 쓰고 있다. 마치 세이브 원고를 쌓아두는 작가처럼 이 영감을 더 폭발시키고 싶어서, 더 느끼고 싶어서 초안을 무작정 써 내려간다. 과연 이 중 얼마가 살아남을지 혹은 다 엎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쓰고 또 쓴다. 이런 내 모습이 '아, 나는 아직 아마추어구나.' 싶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마추어가 아닌 적 없을 테니 지금 나의 이런 모습까지도 보듬겠다. 그리고 언제 또 이런 순간이 찾아올지 모르니 소중히 여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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