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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시작해 보다

내가 만든 북스테이

by 다정

막연하게 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돌아온 육지에서 제일 먼저 구한 건 일자리. 취업을 준비하던 때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돈을 모아서 책방을 차리기 위한 일자리가 필요했다. 대학생 때부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자연스럽게 카페로 알아봤고 직원으로 일할 예정이었다. 3개월 수습이 끝나고 정식 근무를 앞둔 때, 카페가 사라졌다. 건물주가 카페 보증금과 월세를 말도 안 되게 올렸다고 들었다. 그 자리에서 7년이나 자리를 지켰던 카페는 그렇게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함부로 공간을 얻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는 몇 년 동안 임대, 매매 현수막이 붙어 있다가 지금은 아예 건물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참 착잡하다.)


책방을 차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자리가 사라져 이젠 무엇을 해야 하지 싶었다. 그러다 생각을 달리 먹었다. 더 작게 더 빨리 무엇이라도 해보라는 기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때쯤 영업이 끝난 책방에서 머무르는 북스테이라는 형식을 알게 되었고 춘천에 있는 '첫서재'에 다녀왔다. 공유서재와 5년 뒤에 숙박비를 지불하는 다락방은 생전 처음 보는 방식이었고 거기서 머문 짧은 2박 3일이 나와 선택, 삶에 많은 질문을 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5년 뒤의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여전히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한다. 당장 책방을 열지는 못해도 에어비앤비 형태로라도 북스테이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진열해 두고 손님들과 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을 거 같았다.


뭐든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바로 발품을 팔러 나갔다. 봐둔 지역은 광안리 해변이 있는 수영구, 발품을 팔면서 점점 대로변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했다. 운명적으로 그날 나온 매물이었는데 바로 가계약을 걸었다. 온 우주가 나를 돕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상상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계속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 공간에 머물다 갈까, 무엇을 어떻게 채우면 좋을까 고민하며 하나씩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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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건 책이었다. 어떤 책을 어디에 어떻게 놓을지, 이리저리 방향을 고쳐보다가 드레스룸을 작은 서재처럼 만들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읽고 내 세계를 넓혀준 책들을 주로 놓았다. 그리고 작게 시도하는 만큼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오롯이 느끼게끔 시도했다. 주방에는 천연수세미와 설거지바를 두었고 주변 가게에서 포장해 올 수 있게 스테인리스 통과 에코백을 구비해 두었다. 화장실에는 샴푸바와 린스바 두었고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공간이라는 문구를 여러 곳에 붙였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낯설지만 불편하지는 않게 쉬었다가 갈 수 있게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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