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의 일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늘 저녁때가 되면 아버지 언제 와요? 오늘은 집에서 저녁 먹어요? 하는 전화를 했는데 그날은 어머니가 아버지께 전화 걸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유를 물으니 아버지가 고층 건물의 벽에 매달려서 작업을 하는 날이었고 어머니는 걱정되지만 위험할까 봐 전화도 못 걸고 그저 연락이 오기만 기다렸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벽에 매달려서 라는 상황이 무서워서였을까, 전화도 걸지 못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놀라워서였을까 저 순간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나는 좀 클 때까지 아버지의 일에 대해서 잘 몰랐다.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을 들었던 적도 없었고 그저 아버지가 입는 옷을 작업복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바지 주머니에는 이것저것 많이 매달려있네 하는 것들을 통해서 두루뭉술한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의 직업을 명확히 안 계기가 있다. 초등학생 때 나의 인적사항을 적어내는 유인물에 부모님의 직업을 적는 칸이 있었다. 어머니 옆에는 가정주부라고 적었는데 아버지 옆에는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몰랐다. 집에 가서 어머니께 물어봤는데 "샷시... 아니다. 자영업이라고 적어."라는 대답을 들었다. 자 영 업. 이렇게 아버지 옆 칸을 채우며 소방관, 경찰관처럼 아버지의 직업은 자영업이라고 생각했다. 샷시와 자영업이 동의어인 줄 알았고 자영업이라는 단어가 더 멋있어서 아버지 뭐하시노? 하는 질문마다 자영업이요!라고 답했었다.
이번 주 수요일에 아버지의 일터에 따라갔다. 애매하게 일손이 필요한 일인데 아버지가 일손 좀 도울래?라고 물으셨고 과거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러겠다고 말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장림으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일을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와닿진 않았다. 장림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손바닥 부분이 노랗게 코팅된 새 장갑을 주는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정신을 차린 것과 별개로 연장을 옮기는 것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고 그저 4층을 몇 번 오르락내리락거린 게 다인데 땀범벅이 되었다. 과거의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체감되었다.
이번에는 비가 많이 와서 아랫집으로 물이 새는 바람에 그걸 고치는 일이었다. 우선 베란다 창부터 시작했다. 창문을 들어 구석에 옮기고 아버지는 내 허리 높이의 창틀에 올라갔다.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본인이 딛고 있는 창틀과 그 창틀을 잡은 한 손에만 의지해서떼어낼 수 없는 통창의 가장자리에 실리콘을 쏘았는데 그 모습이 스파이더맨 같았다. 위험할까 봐 차마 말도 못 붙였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가 왜 전화도 할 수 없었는지 이해되었다. 일손을 도우러 간 건데 본격적인 작업에는 방해가 될까 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 혼자 미장을 하고 실리콘을 쏘고 망치질을 하셨다. 나는 연장을 옮기거나 큰 문틀을 잠깐 드는 정도의 아주 작은 도움밖에 줄 수 없었다. 아버지 말로는 이제 딸, 아들 다 키워서 예전만큼 힘들게 일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내 눈엔 지금의 일도 대단해서 걱정되고 죄송했다.
자영업과 샷시가 같은 말인 줄 알았던 시기를 지나 다 컸으니 아버지가 하는 일은 뭔지, 얼마나 힘이 많이 들고 위험한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엄청 다른 일이었다. 아버지 작업복에는 왜 그렇게 흰 물감 같은 게 많이 묻어있는지, 아버지는 왜 식당에서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4시간뿐이지만 같이 있어보니 저절로 이해가 된다. 흰 물감이라고 생각했던 실리콘은 조심한다고 해도 묻었고 일단 묻으면 지워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깨고 떼어내고 드릴질을 하다 보면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이 가루투성이가 되었다. 너무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음에도 일손을 도울 일이 생기면 또 가서 아버지를 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