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의 제사를 위해서 삼천포로 향했다. 원래 나는 제사에 잘 따라가지 않았다. 시간이 안나기도 했고 아버지가 장손이라며 우리 동생을 데려갔기에 굳이 나도 가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올해, 언니와 동생은 시간이 안 되고 나는 시간이 되어서 아버지와 함께 시골을 내려가게 되었다.'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보다는 우리 아버지 심심하지 않게 같이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기에 휴게소에 들러 야무지게 돈가스도 먹고 차 안에서 신나게 노래도 부르면서 시골로 갔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검은색 바지와 셔츠로 갈아입고 보자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려진 액자를 꺼내자 아, 오늘이 제사구나 하는 사실이 와닿았다. 기분이 묘했다. 이제까지 내 기억 속의 제사는 형식적인 관습이고 어머니를 괴롭혔던 나쁜 풍습이었다. 그래서 제사에 대한 거부감만 있었는데 제사상 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액자가 올라가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파업 선언 이후 일 년 내내 곳곳에 분포되었던 제사들이 간소화되고 지금 내가 딱 할머니, 할아버지의 제사만 보게 되어서 이런 건지, 아니면 아직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이 생생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우리 온다고 직접 부쳐주셨던 호박전과 할아버지한테 예쁨 받으려 그 옆에서 길고 긴 이야기를 들었던 것까지 모두 다 그리워졌다. 아직도 우리 삼 남매는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그때 그 호박전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추억하기 바쁘고 아버지가 반주를 하실 때마다 할아버지도 얼마나 술이랑 담배를 많이 하셨는지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아직까지 나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하다.
지금 이 제사가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이자 우리 아빠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작은 아버지, 막내 삼촌의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전까지 제사 같은 건 없어져야 해 했던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부엌에서 나올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작은 어머니를 보며 제사 문화에 대한 회의감은 남아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사라져야 한다고 가볍게 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구나, 아버지 마음에 상처를 줬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제사는 어릴 적 기억과는 좀 달랐다. 아버지 옆에 서서 절하는 사람은 우리 동생을 포함한 남자들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막내 삼촌이 나보고 본인 옆에 서라고 했다. 함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려서 좋기도 했지만 어릴 땐 안 됐는데 지금은 왜 되는지 궁금했다. (손주들 중에는 나 혼자 와서 그런가?) 그리고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술 한잔 드리고 싶다고 하니까 어른들이 다 컸네 하시며 흔쾌히 술을 따르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이런 상황이 좋으면서도 낯설었다.
이렇게 기억과는 약간 달랐던 제사를 지내면서도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느꼈는데, 절을 할 때 너무 당연하게 작은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제사 음식을 하지는 않지만 제기 위에 음식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도 그다음을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시고, 제사가 끝나고도 정리를 주도하시는 건 작은 어머니셨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드릴 자리도 마련해주지 않다니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기에 더 답답했다. 작은 어머니는 절 하지 않아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알아주신다고 하셨지만 내 눈에는 우리 집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주한 것 같아 속상했다.
앞으로는 제사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다들 시간을 내어 모여서 안부를 묻고, 굳이 제사 음식이 아니더라도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 잊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좋았던 추억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으니까 가족들과 나누며 더 풍성해지면 좋겠다. 나도 이번에 제사에 참여한 건 우연한 이유였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추억하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그 자리에서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 앞으로 이 날이 일하는 날, 눈치껏 움직여야 하는 날이 아니라 온 가족 얼굴 보는 날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련해주는 거라고 생각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