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다정 Oct 01. 2021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

제사의 순기능

할머니, 할아버지의 제사 위해서 삼천포로 향했다. 원래 나는 제사에 잘 따라가지 않았다. 시간이 안나기도 했고 아버지가 장손이라며 우리 동생을 데려갔기에 굳이 나도 가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올해, 언니와 동생은 시간이 안 되 나는 시간이 되어아버지와 함께 시골을 내려가게 되었다.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보다는 우리 아버지 심심하지 않게 같이 야지 하는 마음이었 휴게소에 들러 야무지게 돈가스도 먹고 차 안에서 신나게 노래도 부르면서 시골로 갔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검은색 바지와 셔갈아입고 보자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려진 액자를 꺼내자 아, 오늘이 제사구나 하는 사실이 와닿았다. 기분이 묘했다. 이제까지 내 기억 속의 제사는 형식적인 관습이고 어머니를 괴롭혔던 나쁜 풍습이었다. 그래서 제사에 대한 거부감만 있었는데 제사상 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액자가 올라가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파업 선언 이후 일 년 내내 곳곳에 분포되었던 제사들이 간소화되고 지금 내가 딱 할머니, 할아버지의 제사만 보 되어서 이런 건지, 아니면 아직까지 할머니할아버지의 얼굴이 생생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우리 온다고 직접 부쳐주셨던 호박전과 할아버지한테 예쁨 받으려 그 옆에서 길고 긴 이야기를 들었던 것까지 모두 다 그리워졌다. 아직도 우리 삼 남매는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그때 그 호박전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추억하기 바쁘고 아버지가 반주를 하실 때마다 할아버지도 얼마나 술이랑 담배를 많이 하셨는지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아직까지 나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하다.




지금 이 제사가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이자 우리 아빠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작은 아버지, 막내 삼촌의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전까지 제사 같은 건 없어져야 해 했던 생각이 얼마나 없는 생각이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부엌에서 나올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작은 어머니를 보며 제사 문화에 대한 회의감은 남아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사라져야 한다고 가볍게 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구나, 아버지 마음에 상처를 줬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제사는 어릴 적 기억과는 좀 달랐다. 아버지 옆에 서서 절하는 사람은 우리 동생을 포함한 남자들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막내 삼촌이 나보고 본인 옆에 서라고 했다. 함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려서 좋기도 했지만 어릴 땐 안 됐는데 지금은 왜 되는지 궁금했다. (손주들 중에는 나 혼자 와서 그런가?) 그리고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술 한잔 드리고 싶다고 하니까 어른들이 다 컸네 하시며 흔쾌히 술을 따르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이런 상황이 좋으면서도 낯설었다.


이렇게 기억과는 약간 달랐던 제사를 지내면서도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느꼈는데, 절을 할 때 너무 당연하게 작은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사 음식을 하지는 않지만 제기 위에 음식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도 그다음을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시고, 제사가 끝나고도 정리를 주도하시는 건 작은 어머니셨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드릴 자리도 마련해주지 않다니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기에 더 답답했다. 작은 어머니는 절 하지 않아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알아주신다고 하셨지만 내 눈에는 우리 집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주한 것 같아 속상했다.


앞으로는 제사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다들 시간을 내어  안부 묻고, 굳이 제사 음식이 아니더라도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으며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좋겠다. 시간이 지나 잊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좋았던 추억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으니까 가족들과 나누며 더 풍성해지면 좋겠다. 나도 이번에 제사에 참여한 건 우연한 이유였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추억하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그 자리에서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 앞으로 이 날이 일하는 날, 눈치껏 움직여야 하는 날이 아니라 온 가족 얼굴 보는 날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련해주는 거라고 생각되길 소망해본다.

이전 06화 가족사진을 찍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