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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Oct 08. 2021

앞으로의 언니가 그려지는 향

언니의 생일을 축하하며

나는 사람들을 챙기는 걸 좋아한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하고, 좋아하겠지? 라며 기대하는 과정이 기쁘다. 선물이나 연락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커다란 행운이고 다시금 주변을 챙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런 나보다 주변 챙기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있는데 바로 우리 언니이다.


언니는 사소한 인연부터 주변 친구들과 가족까지 모두에게 마음을 쓴다. 친구나 주변 사람들의 생일이 되면 상대가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내가 어떤 걸 주고 싶은지 등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처음에는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하는 내 기준에서도 피곤하다고 느낄 정도로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받는 사람들은 저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의문 들었다. 알아차리기 쉬운 마음이 아니니 괜히 언니의 마음씀이 아깝다고도 느꼈다. 챙기는  본인이 좋으려고 하는 일이니 언니가 피곤하지 않을 만큼만 고민하고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동생으로써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 몇 년 동안 언니 바로 옆에서 언니를 겪고 나서야 주변을 배려하고 감사해하는 모든 모습들이 언니의 한 부분이며 따라 할 수 없는 언니만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답다, 언니스럽다는 말에는 언니의 이런 선함이 담겨 있다.




사실 위에서 한 말은 전부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언니가 나에게 쓰는 마음과 사랑의 크기를 내가 알아줬는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주는 것보다 받는 걸 더 당연하게 생각한 건 아닌지. 그래서 이번에는 그 누구보다 언니의 생일을 기다렸다. 언니가 해줬던 만큼 챙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들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번이고 선물해줘야지 마음먹었던 물건을 올해의 생일선물로 결정 내렸다.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선물을 결정했다는 들뜬 마음에 "언니! 올해는 뭐 필요한지 안 물어볼 거야! 그냥 받아!" 이렇게 선언하기도 했다.


올해 내가 언니에게 꼭 주고 싶은 선물은 향수이다. 향수가 뭐 별거냐 싶지만 아직까지도 나에게 향수는 선물 받아야 쓰는 물건이기에 언니에게도 내가 선물해주고 싶었다. 선물로 향수를 빠르게 결정한 것과 달리 향을 고르는 과정 꽤 길었다. 코는 빨리 피곤해져서 3개의 향을 맡으면 그 이후에는 잘 느끼지 못한다는 데, 언니에게 잘 어울리는 좋은 향을 선물하고 싶어서 달달한 향부터 꽃 향, 비누 향, 머스크 향 등 온갖 향을 맡아봤다. 새로운 향을 맡았다가 맡았던 향을 다시 맡아보고, 코가 일 년 치 일을 다 한 듯했다. 이 향도 저 향도 다 이 향 같아지 코가 이제 더 이상 일을 못한다고 항복할 때쯤 어느 향을 딱 맡게 되었다. 이제까지 후보 1, 후보 2 이렇게 나름대로 정리해두었던 내 머릿속에서 바로 1번으로 떠올랐다.


향수가 그려내는 이미지 처음으로 느껴다. 을 맡으니 일 잘하는 멋진 어른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거리를 거니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졌다. 향수는 버버리 위크앤드 우먼이었다. 색해보니 모험적이고 활기찬 여성을 위한 향수라는데 언니와 찰떡이었다. 늘 나를 응원해주는 언니에게 나도 응원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 마음까지 잘 담길 것 같았다. 선물까지 준비되니 언니의 생일이 얼른 오길 기다렸다. 가족끼리는 음력으로 챙기는 데 10일간의 텀도 기다릴 수 없어서 양력로, 심지어 12시가 되기도 전에 선물과 편지를 주며 제일 먼저 언니의 생일을 축하했다. 언니가 놀라고 좋아하는 모습에 너무 뿌듯했다. 역시 선물은 받는 사람이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주는 사람의 기쁨도 커지는 것 같다.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저 모습 하나만을 위한 것이었나 보다. 언니, 내 언니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언니의 사고뭉치 동생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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