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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Apr 28. 2021

특별하지 않게 사랑하는 법

채식과 환경보호, 그 사이 어딘가

채식을 마음을 먹고 처음 한 일은 주변에 알리기였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그 반응을 받아들이는 것도 시작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끼니를 가장 많이 공유하는 가족들의 반응은 특별하지 않았다.


채식을 하겠다고 하자마자 마주한 점심이 오랜만에 만난 삼촌과의 외식이었다. 불현듯 걱정이 앞섰다. 첫 번째는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을까였고 두 번째는 삼촌이 비건을 낯설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메뉴를 정할 때 아빠가 먼저 우리 딸내미 일주일간 비건을 한단다. 동물 보호 차원에서.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리고 삼촌도 그렇나. 소바는 먹을 수 있제? 라며 담담하게 대답해주셨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따스해서 사랑이 차오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도착한 소바집. 아빠는 한우육회 비빔소바, 나와 삼촌은 비빔소바를 시켰다. 탁월한 메뉴 선정이라며 들뜬 나에게 소바가 나왔다. 쓱삭 가위질을 한 번 하고 비비기 시작했다. 비비면서 계란을 입힌 고기 고명이 보였다. 앗 이건 나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인데 라며 속으로 당황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불만을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 당황한 기색을 숨긴 채 일단 고명을 제쳐두고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식을 할 때마다 이런 피치 못할 경우에 음식을 남기면 그거야 말로 음식물 쓰레기로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야무지게 비벼서 싹싹 긁어먹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비빔소바를 먹은 것이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고기를 먹었다는 생각보다는 음식을 남기지 않았다는 데에 더 큰 뿌듯함을 느꼈다.




저 날은 든든한 점심 이후 특별한 저녁까지 먹었다. 바로 나의 음력 생일상이다. 비건 1주일 도전 중 가장 걱정된 끼니인데 언니가 비건 레시피를 찾아 맛있는 한상을 만들어주었다. 레시피를 찾고 요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기꺼이 해주어 너무 고마웠고 든든했다. 메뉴는 표고버섯 미역국과 엄청난 재료 준비가 필요한 마파두부였다. 퇴근하자마자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한다고 피곤할텐데도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는 언니. 내가 가질 수 없는 저 사랑의 크기, 그게 언니를 이루고 있는 큰 부분이라는 게 또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케이크 대신 비건 빵집에서 사 온 작은 머핀에 초를 꼽아 생일축하를 했다. 비건을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알렸을 때 반응이 특별하지 않아 더 고마웠는데 사실은 엄청나게 응원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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