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의 물건들
작업실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기록해 보려고 한다. 글로 읽는 작업실 집들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나만의 공간을 꾸밀 때 고려해야 할 점을 떠올려 보거나, 자신의 취향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껴 봐도 좋을 것 같다.
공기와 향기 - 디퓨저/인센스/제습기
작업실은 반지하 특유의 습합과 눅눅함이 있어서 입주 초반에는 환기에 무지 신경이 쓰였다. 눅눅한 냄새를 덮어줄 수 있는 향을 고민하다가 무화과 향 디퓨저를 놓았더니 은은한 풀향이 살짝 섞여 훨씬 낫게 느껴졌다. 작업실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면 조금 눅눅한 무화과 냄새가 퍼진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제습기 2대에 가득 찬 물을 뺀다. 제습기는 각각 14L, 12L 짜리를 쓴다. 한 대로 부족해서 한 대를 더 들였다. 소음이 조금 있지만 강력한 바람과 회전이 특징인 서큘레이터를 틀고, 탁상용 미니 선풍기로 쾌적함을 더한다. 2025년 5월 초 입주한 작업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말 까지 에어컨을 놓지 않았다. 에어컨을 놓지 않아도 못 견디게 덥지 않아서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만약 계약 연장을 한다면 내년에는 에어컨을 설치할 것이다. 혼자 쓸 때는 괜찮지만, 여러 명과 쉐어할 용도라면 에어컨 없이는 조금 불편할 것 같다.
가구들 - 조명/의자/책상/모니터/스피커
작업실에 도착해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약 150cm의 반질반질한 원목 책상이 보인다. 동생과 함께 살 때 동생이 구매했던 제품인데, 거실에 두고 쓰다가 내가 가지고 나왔다. 형광등 대신 곳곳에 배치해 둔 스탠드 3개를 켠다. 밤이든 낮이든 형광등을 밝게 켜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도 큰 창문으로 햇빛이 잘 들어온다. 이 공간은 등기상 무려 지하 2층인데도! 놀러온 친구들이 매번 '이게 지하 2층이라고?' 하며 놀라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기적의 지하 2층이라니까.'
책상에 바로 앉을 기운이 없으면 이케아 '포엥(POÄNG)' 안락의자에 털썩 앉는다. 무릎을 올리고 몸을 옆으로 웅크려도 될 정도로 큰 사이즈라 편안하다. 5년 전 쯤 구매해 직접 조립했다. 책상 앞에는 아이보리색 커버를 씌운 듀오백 의자가 비치되어 있다. 팔걸이가 조금 찢어졌지만 튼튼해서 앞으로 5년은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상위에는 맥북 에어를 올려둔 거치대와 듀얼로 쓰는 삼성 스마트 모니터가 보인다. 노트북과 모니터 모두 이전 회사에 다닐 때 복지 포인트로 구매한 물건이다. 아직까지 누리고 있는 직장인 복지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친구들이 여러명 방문해 책상을 함께 써야 할 때는 모니터를 벽으로 붙이고 간이 의자를 더 꺼낸다. 당근에서 사온 2개의 이크홈 원목 접이식 의자와 판매자분이 직접 맞추셨다는 패브릭 스툴을 놓으면 5명까지 함께 앉을 수 있다.
전용으로 쉐어하는 친구를 위한 책상/의자는 한쪽 벽면에 따로 준비해 두었다. 화이트 프레임으로 깔끔한 '소프시스'의 접이식 책상을 놓았고 의자는 당근으로 저렴하게 구매한 '핀즈(finj)' 브랜드의 '톨로델'이라는 모델이다. 사실 이 책상과 의자는 조금 늦게 마련했는데, 쉐어하는 친구가 '난 괜찮아~' 하며 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는 것을 보고 기함하며 바로 다음날 책상을 주문하고 의자를 당근해 왔다.
냉장고와 주방
작업실 냉장고는 예전 집에서부터 쓰던 대우 루컴즈의 소형 냉장고이다. 옆에는 친구들이 써 준 엽서와 카드를 마그넷으로 차곡차곡 붙여 두었다. 오며가며 읽으면 미소가 지어지고 힘이 난다. 냉장고에 미리 홍차나 녹차를 우려 유리병에 가득 채워두고 마신다. 이 유리병은 2025년 초 낙성대역 인헌동에 있던 '책방여여'가 문을 닫을때 책방지기 민아님이 나눔해 주신 물건이다. 커피, 차, 맹물까지 마시는 것이라면 다 좋아해서 늘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한다. 냉장고 옆 콘센트를 가리려고 친구 소현이 그려준 캔버스 그림을 앞에 걸어두었다. 소현이 제주도에 살 때 친구들과 놀러갔던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얼마 전 저 그림 속 주인공들이 모두 함께 작업실에 놀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꾸미기 아이템 - 창문/커튼/러그/거울
누군가 작업실 꾸미기 컨셉이 뭐냐고 묻는다면, '블랙/블루 아이템을 놓으려고 하긴 했는데요...' 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단한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산을 계획해 아이템을 고른 것도 아니라서, 원래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일단 놓고 조금씩 조금씩 꾸미다 보니 대충 원하는 대로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창문에는 검정색 얇은 쉬폰 커튼을 달아 평소에는 끝을 묶어 놓는데 로맨틱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아 좋다. 창문 가득 보이는 앞집 감나무의 풍성한 가지와 잎이 참 고맙다.
이케아 안락의자에는 파란색 잔꽃 디자인의 패브릭을 얹어 두었고 바닥에는 쿠팡에서 산 이니띠움 컬러마일드 러그를 깔았다. 과감하게 비비드한 색을 깔았는데 포인트가 되어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화장실
나를 포함한 소수의 인원이 쓰는 화장실이라 생활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심플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세숫비누 1개와 거품 나는 핸드워시 1개, 수건 1장과 휴지를 꺼내두고 나머지는 모두 벽에 있는 작은 서랍장과 뒤 편 창고에 넣어 둔다. 서랍장을 열면 칫솔 치약과 월경용품, 혹시나를 대비한 헤어드라이어와 고데기가 있다. 처음에 둘 때는 이걸 쓸 일이 있겠어? 여기서 샤워도 안 할 텐데.. 싶었지만, 급하게 젖은 무언가를 말리거나 외출 전 머리를 만질 때 꽤 유용하게 쓰고 있다. 작업실 화장실의 특징은 화장실 크기의 절반만한 넉넉한 창고가 안에 딸려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문을 열어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약간 뭐랄까, 불법 거래한 마약이나 금괴라거나 아무튼 불미스러운 그런 것들(?)을 숨겨놓기에 딱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정말 놓을 것이 없어서 락스, 유리세정제, 마대걸레 등 청소용품 몇 개만 보관하고 있다.
붙박이장
이 작업실을 계약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 바로 넉넉한 붙박이장이었다. 엄청난 양의 수납이 가능하다. 지금 이 흰색의 붙박이장 안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부터 다른 계절의 옷들, 재작년에 500권을 제작해 조금씩 팔고 있는 그림일기장 재고 등이 마구 들어 있다. 아무거나 다 넣어버리고 깔끔한 척 내숭 떨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마음에 든다. 다만 누가 열어볼까봐 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