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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러가 작업실에서 일하는 법

by 비잉벨

회사 사무실에 내 명함이 올려진 책상을 가져본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3년간 프리랜서로 N잡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곳에서 일해왔다. 마케팅 또는 컨설팅을 하면서 클라이언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이 꽤 많았다. 회사에서 정해진 기간동안 빈 책상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면 그 자리에서 내 노트북으로 일했다. 노트북 받침대가 없는 회사는 장시간 일하기에 불편하므로 휴대용 거치대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어쨌든 여기에 정규로 속한 인원이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장점과 단점이 뚜렷했다. 장점은 은근히 자유롭다는 것이었고, 단점은 눈칫밥을 조금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트테라피 강사로서 전국을 다니며 일하기도 했다. 때로는 어느 기업의 회의실, 지방 연수원, 지자체 기관이나 도서관이었다. 전달받은 장소에 도착하기 5분 전, 마인드세팅을 한다. '나는 프로 강사다. 나는 누구보다 이 강의를 잘 해낼 준비가 된 사람이다!' 미소를 띄면서 들어가 인사를 하고 스크린과 스피커, 마이크 등 장비를 세팅한다. 그림일기 워크샵을 할 때는 색연필과 그림일기장을 큰 가방에 잔뜩 챙겨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집 근처 카페나 아예 거실을 사무실 처럼 꾸려 집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작업실이 생기고 나니 다른데 갈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안정감이 생겼다. 작업실에서 하는 일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해 두려고 한다.



먼저 일할 때 쓰는 도구들이다. 장비는 앞서 <작업실의 물건들>에서 언급했듯 맥북 에어 15인치와 삼성스마트모니터, 그리고 애플 키보드와 애플 마우스를 쓴다.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노트북을 켜면 항상 노션을 켠다. 거의 5년 째 매일 노션에 데일리 업무일지를 써 오고 있기 때문이다. 데일리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주간으로 모아 회고한다. 지금 이 에세이는 화/금 마감으로 체크리스트에 들어 있다. 일을 위해 구독하는 소프트웨어로는 디자인 툴인 '캔바', 클라이언트 회사와의 소통 채널인 '슬랙 커넥트', 온라인 화상 모임을 위한 '줌' 등이 있다. 스포티파이, 넷플릭스 등 기타 콘텐츠 구독과 구글 드라이브, 카카오톡서랍 등 클라우드까지 매달 요금을 내고 있으니 구독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작업실에서는 마케터 또는 멘탈스타일리스트로 일한다. 마케터의 일은 콘텐츠를 만들거나 제안서를 쓰는 일, 프로모션이나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기획을 하기도 한다. MS 오피스, 키노트, 피그마 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해 산출물을 만들어 클라이언트와 공유한다. 멘탈스타일리스트의 일은 조금 더 복잡하다. 컬러명상 도서 <오늘의 기분은 무슨 색일까?>와 컬러풀 감정일기장 <오늘을 칠하다>를 기본 베이스로 만들어 낸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작업실에서 온라인 모임을 진행하거나 워크샵,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참여하기도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다른 일 하나가 더해졌다. 바로 재취준생의 일이다. 매일 조금씩 채용공고를 들여다보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수정해 제출한다. 온라인 면접이 잡히면 작업실에서 면접을 봤다.


작업실을 함께 쉐어하고 있는 친구는 현재 직장인이다. 일본어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에 다니는지라 작업실에서 그는 주로 일본어 공부를 한다. 학습지 같은 것을 풀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튜터 선생님께 1:1 과외를 받을 때도 있다. '과외 소리 시끄러울 텐데 괜찮아?' 라고 묻는 친구에게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이어폰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친구의 열심히 공부하는 소리가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이 공간이 우리의 작은 열정으로 조금씩 채워지는 것 같아서 기뻤다. 얼마 전에는 작업실 최대 수용인원인 4명을 초대했다. 3년째 이어오고 있는 브랜딩 모임 <마이 빅 브랜드>의 정기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아직은 소수의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작업실을 오픈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여기서 그림일기 모임이나 명상 모임도 열어보고 싶다. 동네 가까운 곳에 책방이나 문화 공간이 없으니 수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보안 문제가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지금처럼 소수의 친구들과만 누리고 싶기도 하고, 일을 크게 벌려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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