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안적인 배움, 사이버대학생활 이야기
2015년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해 학사 학위를 땄다. 그런데 나는 2023년, 또 다시 4년제 대학에 3학년으로 편입하기로 했다. 심리학과 예술치료학 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다. 민간 기관에서 자격증과정을 취득했지만 더 갈증만 생겼다. 그런데 진학할 학교를 알아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예술치료 전공은 학교마다 성격이 다른 듯 했다. 어느 학교는 교육대학원에, 어느 학교는 인문대학원에, 어느 학교는 보건의료 쪽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석사 과정에 진학하기에는 한 학기에 500만원 이상 드는 학비 부담이 컸다. 사이버대학교는 한 학기에 100만원 안팎의 등록금이었고, 게다가 한국장학재단에서 국가장학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학부 때 받았던 교내 장학금이 있어 국가장학금 수혜 횟수가 꽤 남아 있었다. 결국 전액 장학금을 받고 모 사이버대 예술치료학과에 편입할 수 있었다.
2023년은 메타버스 열풍의 한 가운데였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사이버대학답게 메타버스 입학식을 했다. 메타버스 입학식은 수백명이 각자의 캐릭터로 접속해 학교에서 캠퍼스처럼 꾸며놓은 맵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카오스 상태의 행사였다. 작디 작은 내 캐릭터를 화면 속에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입학식에 참여했다. 학교 수업은 <음악심리와 치료>, <심리검사 및 평가>, <이상심리학>, <미술치료 매체 및 기법>, <컬러 테라피> 등 공부하고 싶던 내용으로 가득했다. 매주 올라오는 강의를 온라인으로 수강하여 출석하고, 제 때 과제를 내고, 시험을 보는 일. 혼자서도 배우고 싶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프라인 수업 청강 기회도 있었다. 수강중인 음악치료 과목 교수님이 모 대학원 음악치료 전공생이 진행하는 워크샵에 한 학기 동안 함께할 참여자를 구한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셨다. 바로 신청을 했고, 당첨이 됐다. 덕분에 한 학기 동안 진짜 대학원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멋진 캠퍼스에 있는 '00대학교 00대학원' 이라는 푯말을 보며 나도 여기에 소속된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도 사이버대학생 말고 대학원생이 되고 싶었다. 한 학기 동안의 워크샵이 끝나고 조금 더 남은 학과 과정을 수료하면 앞에 있는 분은 석사가 되겠지만 나는 그대로 학사일 것이다. 나도 빨리 석사 따고 싶은데. 그것이 내 전문성을 인정받는 길이라면 하루라도 더 빨리 그러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에 열등감이 올라왔다. 그렇지만 꽁해 있을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워크샵은 훌륭했다. 그 전까지는 미술치료의 현장감만 알고 있다가 처음 음악치료 현장에 온 것이었는데, 모든 매체가 흥미로웠고 치유 효과도 바로 체감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음악치료 워크샵 가는 날이 너무 기다려졌다. 마지막 날에는 내가 만든 미술치료 교재를 선물로 드렸다. 예술로 치유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동료로서 서로의 앞길을 응원하며 인사를 나눴다.
예술치료학과에 편입해서 공부중이야, 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들 '편입' 이라는 말은 패스하고 "오 대학원 다니는구나"라고 했다. 아니아니, 사이버대. 대학원은 아직 좀 부담스러워서... 라고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어쩐지 주눅들었다. 내 공부에 내가 떳떳하면 되는데, 마치 돈이 없어서 대학원을 못간 걸 들킨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제대로 주눅이 들어버린 경험이 두 번 있었다. 학부 때 지도교수님을 오랜만에 찾아뵌 날이었다. 교수님께 막 살가운 타입은 아니었던터라 걱정했는데, 오히려 너무 반가워하시며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셨다. 지나가던 조교 후배님까지 옆에 앉혀두고 선배 경험담 좀 듣고 가라며 눈을 빛내던 교수님은 내가 사이버대에 편입했다는 말을 하자마자 우아하게 의문을 품으셨다.
"어머, 왜 사이버대를 갔어? 대학원을 가야지?"
"아직 좀 확신이 없어서요, 학교 고르는것도 어렵고... 기초부터 공부하고 싶어서 갔어요."
"아냐, 공부하는 내용은 대학원도 똑같아. 시간이 조금 아깝네. 나중에 박사는 여기 와서 해도 좋겠다."
제가 박사과정 학비까지 낼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어요...라고 대꾸할 필요는 없으므로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후 미술치료 창업 조언을 들으러 갔던 모 대표님과의 대화에서도 '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냐'는 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대학원에 가면 된다>는 문장을 사고하는 데 아무 걸림이나 부침이 없는 뇌가 부럽다고 해야하나, 신기하다고 해야하나. 나는 대학원을 정말 돈 때문에 못 간걸까? 다들 어떻게 석,박사 과정에 턱턱 진학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할 때는 내가 원한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본다. 내가 원한건 단순했다. 그저 '예술치료 공부를 더 하는 것'. 조금 더 신뢰도 있는 기관에서 가르쳐 주는 배움을 원했다. 세상은 학사 학위가 있는 나에게 다음 단계인 석사로 가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내가 지금 갈 수 있는 길은 그 길이 아니니 대안적인 배움터로서 사이버대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 아닐까? 그러니 더 이상 주눅들거나 수치스러워 하지 않아도 될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대치동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을 인터뷰한 방송에서 10살도 안된 어린이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고 묻자,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 대학교 졸업하면 석사, 석사 졸업하면 박사 해야 한다고 마치 공룡 이름이라도 외우듯 줄줄 말했다. 앞으로 약 20여년간 제 삶은 끝없는 트레드밀 위일 것이라 말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너무 어려 그 의미를 모르는 천진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트레드밀을 탈 여유가 없어 일단 운동장을 뛰기로 했다. 운동장을 뛰면서는 내리쬐는 햇빛도, 코 끝을 스치는 바람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운동 효과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것은 덤이고, 운이라 생각하며 너무 욕심내지는 않는 것이 좋다. 가고싶은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