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연습#10.(211207)
‘빈곤퇴치’가 전 세계적인 이슈다. 선진국이라고 평가받는 국가들은 서둘러 글로벌 빈곤퇴치를 위한 공동 행동에 서명했고, 앞으로 10년 안에 ‘빈곤 제로(Anti-Poverty)’, 말 그대로 ‘빈곤’을 없앤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그럴듯한 실행계획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빈곤이 문제가 아니었던 적이 있던가.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아니, 인간이 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순간부터 ‘빈’과 ‘부’는 존재했다. 어쩌면 있음과 없음. 혹은 많이 가짐과 모자람 사이에서 인간이 모여있는 ‘사회’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빈’과 ‘부’는 소유의 표현이자 권력의 흐름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빈곤’의 퇴출은 권력의 재구조화, 혹은 무의미한 공수표에 불과했다.
『브라질엔 마약중독자 수 천명이 불법으로 한 지역을 장악한 ‘크라콜란지아’라는 곳이 있다. 우리 말로는 ‘마약의 거리’라는 뜻인데, 돈 없는 마약 중독자들이 몰려들면서 생지옥이 된 거리를 특정하는 단어다. 수 천명이나 되는 마약 중독자들이 노숙촌을 형성하고, 구걸로 얻은 돈은 고스란히 마약을 사는 돈으로 나간다. 약 때문에, 혹은 굶주림이나 질병으로 하루에도 몇 명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게다가 해당 지역 최대 마약 조직이 관리하는 탓에 외부의 개입은 철저하게 차단된다.
모든 생명이 죽어가는 그곳은, ‘빈곤’만이 유일한 유산이다. 극단적인 빈곤에 빠진 마약 중독자들의 빈곤이 퇴치될 수 있을까.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어떠한 자발적 노력도 없는 이곳의 사람들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빈곤’은 한 국가의 정책으로, 국제단체의 슬로건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이슈는 온통 ‘빈곤’으로 쏠리고 있다. 온 세상이 못 사는 문제로 떠들썩하니 국내에서도 ‘빈곤’은 하나의 새로운 도덕이나, 사회적 규범으로 취급 받음과 동시에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빈곤’을 외면하거나 방조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하는 법안을 구상 중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 국민은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적 자질 또한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빈곤’ 이슈를 관리하던 복지부의 한 부서는 글로벌 ODA 업무까지 이관받아 ‘빈곤 관리청’으로 승격했다. 뉴스는 당연하고 예능에서도, 심지어 개인 방송에서도 ‘빈곤’을 주제로 콘텐츠가 제작된다. 예전에 ‘기아 체험’이 ‘빈곤 체험’이란 이름으로 누구나, 언제든 경험해볼 수 있는 센터가 우후죽순 생겼다. 개중에는 민간 센터도 있었는데, 10만 원 남짓한 참가비를 내야 하지만 이미 예약이 연말까지 꽉 차있다고 했다. 이런 내용도 뉴스와 예능과 개인 방송을 통해 얻은 정보다. 이제 더 이상 ‘빈곤’은 아프리카 어딘가, 빈민촌에 거주하는 누군가의 문제를 떠나 현실, 자신의 문제로 변했다. 이로써 현시대의 ‘빈곤’은 유행이고, 도덕이자, 의식 있는 문화인의 의무가 되었다.
모든 사회가 ‘빈곤’ 문제의 해결을 부르짖기 시작하니 ‘착한 우월감’을 얻기 위해 ‘빈곤’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점차 관심을 잃어갔다. 그들은 ‘환경’이나 ‘문화’ 같은 영역의 문제가 빈곤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이전보다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박탈당한 자신들의 ‘우월감’을 되찾으려는 듯 사회 활동을 전개했다.
“지구가 죽어가는데, ‘빈곤’이 뭐가 대수냐, 지구가 죽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환경’이나 ‘문화’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집회에서도 어김없이 ‘빈곤’이 등장한다. 심각한,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데 ‘빈곤’에만 정신이 팔려있으면 안 된다는 리플릿도 나눠준다. 확실히 현재 시점에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빈곤’ 임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의 의구심은 지속된다. 언제 ‘빈곤’이 문제가 아녔던 적이 있던가.
『외국인 노동자, 베트남이었는지, 태국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동남아시아에서 온 남성이 첫 시작이었다. 그는 포천 어딘가에 고무 다라를 만드는 공장에서 3년 동안 일했다고 했다. 비슷한 상황의 외국인들이 대여섯 명 모 여살 수 있는 숙소도 지원했고, 가끔 식재료도 사주시는 감사한 사장님은 고향에 있는 친형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비자가 살아있던 첫 2년은 그렇게 감사하게, 무탈하게 보냈다.
월급의 대부분을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고 했다. 그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한 채 일만 했다. 먹는 걸 아꼈고, 옷은 얻어 입었으며, 공장과 숙소 외에는 어떠한 여가도 즐기지 않았다. 그렇게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일만 했다. 일과 돈에만 집중했다. 그것만이 내 가족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2년이 지나고 비자가 만료되면서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자, 사장은 일방적으로 조금씩 월급을 적게 지급했다고 한다. 처음엔 10~20만 원 정도, 그다음 달은 40만 원, 또 다음 달엔 60만 원, 이전에 비해 1/3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았을 즈음에서야 형 같은 사장님께, 딱 잘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들은 사장님은 딱. 하루만 더 일해달라고 부탁했고, 딱. 하루만 더 출근했던 날, 공장에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곧바로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최근에는 그가, 다시 한국에 오기 위해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그동안 모았던 대부분의 돈을 날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다시 ‘빈곤’,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말 그대로 ‘피 나는’ 노력을 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격렬하고 감동적인 노력, 안타까운 과정 없이 결과만 따지면, ‘크라콜란지아’ 마약 중독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빈곤’이란 바닥이 존재하지 않는 늪과 같다. 딱딱한 바닥을 박차고 힘차게 뛰어올라, 벗어난다는 행위가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와 같은 ‘상황적 근거’는 ‘지속된 의구심’에 대한 답이 됐다. ‘‘빈곤’은 인간의 의식이 발현된 순간부터 언제나 존재했고, ‘부’의 지점이나 ‘빈’의 지점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신분’이기 때문에, 절대로, 어떤 노력을 한들, ‘빈’은 ‘부’가 될 수 없다’는게 ‘빈곤’이 중독된 세상에서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
‘빈곤’의 종말에 대한 외침이 길어지면서, 몇몇 이들은 자신 또한 ‘빈곤’에 속해 있으며, 운명의 틀을 절대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했다. ‘부’와 ‘빈’의 영역이 철저하게 구조화된 세상에선 노력, 기회, 평등이나 공정의 가치가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행동이었음을 깨달았다. 현실 자각, 깨달음의 대가는 분노였다. ‘빈곤’ 퇴출을 위한 정부와 국제단체, 심지어 신속하게 ‘빈곤’ 퇴치를 기업의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기업, 민간단체는 그들의 분노가 향하는 과녁이 되었다.
노숙자에서부터 거의 모든 노동자, 심지어 꽤 연봉이 높은 중간 관리자까지, 자신이 실제론 ‘빈곤’ 했음을 깨닫는다. 오래전 칼 맑스의 말처럼,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가 부유한 자본가와 그렇지 못한 이들을 갈라놓는 기준이라는 새 시대의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흐르자 건물주 할머니는 정체를 숨기고 건물 앞에 노상을 깔고 나물을 팔았고, 대기업 총수는 시설 관리원처럼 차려입고 뒷문으로 출근했다. 제일 먼저 ‘빈곤’의 종말을 외쳤던 국제단체의 사무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확대된 시위대를 피해 도피 중이다. 자신의 ‘빈곤’과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났다.
최근 들어 인간의 세상은 사상 초유의 변화를 겪고 있다. ‘빈곤’의 종말을 위한 움직임의 시작이 구조적 불합리성을 드러내는 방아쇠가 되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만들어낸 빈곤의 구조. 이런 불합리성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분노했다. 게다가 자신이 옳다고 믿은 삶 또한 ‘빈곤’의 틀 안에 갇혀있음을 인식했고, 행동했다. 그렇게 변화는. 종말을 외치는 이들의 종말을 위한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