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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Jan 05. 2022

다섯 살 인생

2022. 연습#1.(220105)

Dolly Dingle’s Patriotic Party (circa 1918), Grace Gebbie Wiederseim Drayton

  쓰고, 달고, 시고, 짭짤함을 인생이라고 한다면, 아직은 달달함이 지배적인 다섯 살배기 아들의 삶에 변화가 일고 있다. 대부분 부모가 만들어낸 환경의 변화가 원인이지만, 어쨌거나 변화된 환경, 새로운 인생의 단면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쓰고, 시고, 짭짤한 변화를 바라보는 이제 갓 다섯 살의 인생은 꽤나 험난하다.


   동으로 이사를 했다. 계약 기간이  년도  남았었는데, 주인이 새로운 주인에게 집을 팔았다. 새로운 주인은 나랑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는데, 선심이라도 쓰듯, 계약 만료 때까지 살다 나가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매달, 비슷한 시간에 계약 만료일을 문자로 알렸다. “안녕하세요, 집주인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문자에는 우월함이 가득했다. ‘ 소유하고 있는 주인,  그런 ‘ 빌려 쓰고 있는 세입자.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짐을  달라는 내용의 문자였기에 초반  번은 가볍게 넘겼는데, 그런 나의 태도가 불쾌했는지, “확인하셨으면, 답장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장이 더해진  문자를 받았다. 우리 가족이 머물던 공간을. 자신이 새로운 주인이라고 주장하며, 등장한 사람에게 빼앗기게 생겼다. 그런데 그는 나를. 그에게 종속된 공간처럼, 그에게 종속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처럼 대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그날에 맞춰 집을 알아볼게요하고  또한 최대한 담담하게, 최대한으로 감정을 빼고 말했다.


  다섯 살이 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그토록 고달파했던 네 살과는 전혀 딴판이 되어 있었다. 매일같이 보지만, 매일 또 자라는 키와 늘어나는 몸무게, 어제보단 성숙해진 말투와 농담까지. 확실히 네 살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전 집이 더 좋았어요”, 이미 두 달 전에 이사를 왔는데, 어제서야 속마음을 드러냈다. “슬픈 마음이 들었고, 여기가 좋지 않아요”, 아찔했다. 언짢거나 씁쓸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살의 인생은 어찌, 나보다 더 담담해 보였다.


  명백한 하대였다. 어렵사리  , 좌우 구조가 바뀐,  낡은 집으로, 훨씬  많은 돈을 얹혀주고 이사할  있었다. 잔금을 받기 위해, 그를 만났다. 돈을 줘야 하는 사람. 받을 사람. 전달해야  사람.   돈을 전달받고 어딘가로 전달해야  사람,  전달시키고 자신의 몫을 전달받아야  사람까지. 서로 빽빽하게 연결되어있는 고리시작점인 그가, “절반만 먼저 드리면  되나요?”라고 했다. 눈치를 살피더니, “천만 원이라도”, “아니, 백만 , 그것도 어려우면 장기수선충당금이라도 내일 드릴게요”, 당황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런 인간이 있나 싶었다. “안되죠 당연히”, 단호하고 불쾌한 마음을 담아 뱉었다. “집을 확인하고 드려야 하니까 그래요라고 서둘러 핑계를 댔지만, 아마도, 명백하게 하대였다. 서로의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권위를. 주종의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멋대로 던져댔던 말들. 거슬리고 불쾌하고, 비위 상하는.  그대로 아니꼬운 그의 행동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실소와 함께 “돈이 모자란가요라고 물었다. 반박자만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집이 궁금하면 당장 보고 오세요, 지금  돈을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아시긴 하세요?, 지금 일어나서 집을 보고, 바로 보내주세요.”, 마스크 때문에 동그래진 눈밖에   없었는데, 확실히 당황스러워했다. ‘지금 내가 너한테 돈을 빌리는 거냐, 그거  돈이야라는 카운터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는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 통쾌했다.


  눈을 깜빡였다. 결막염이라고 생각해서 안과를 데려갔고, 의사도 결막염이라고 했다. 고통스럽고, 서럽게 울면서 매일같이 안약을 넣었다. 깜빡임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찾은 병원에선 “눈썹을 찌르지도 않고, 갑자기 눈을 깜빡이니 결막염일 확률이 높습니다”, 난 “그래서 결막염이라는 건가요?”하고 다시 물었다. “약을 넣어서 깜빡이지 않는다면, 결막염이지요”, 아이는 등 뒤로 숨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삼키며 “결.막.염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아들을 안고 바로 나왔다. 처방전은 버렸지만, 약국에 들러 아들이 탐내 하던 공룡 모형을 사줬다. 좋아했다. 거의 흥분에 겨워 소릴 질렀다. 두려움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네 살이었던, 아들의 인생은. 달콤, 그리고 쌉싸름했다.


  같은 동네인데도 분위기는 달랐다. 이웃들은 이전보다 더. 냉소적이었고, ‘좌’에서 ‘우’로 바뀐 구조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자신의 외모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는데, 대체로 상대를 바라볼 땐,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좌’, ‘우’가 바뀐 모습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다 큰 어른조차, 아니 심지어 점차 퇴화하고 있는 늙은 나조차 어색함에 몸서리쳐지는 공간에서, 네 살, 이제 다섯 살이 된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과를 다녀와서도 몇 주 동안을 더 깜빡거렸다. 인터넷에선 절대, 절대로 놀라거나 알은체해선 안된다 했다.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가진 부모의 인생은. 씁쓸함을 넘어 너무나 시큼해서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다.


  이전 집, 그러니까 이사를 나온 집주인의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보일러가 잘 작동했냐고 물었다. 괜찮았지만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을 만큼 낡았었다고 했다. 며칠 뒤엔 집주인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에게도 연락이 왔다. 아랫집이 소음에 예민한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조용하면 괜찮고, 시끄러우면 예민하다고 했다. 주종관계의 소멸을 나의 퉁명스러운 에서 뒤늦게 깨달은 걸까. 그 이후, 그러니까 이번 달에는 다른 문의를 받지 않았다.


  누워서 잠든 줄 알았던 아들이 “엄마, 아빠. 사랑해요”, “가장 1번으로 사랑해요”라고 했다. 능력 없고 못난 부모 탓에 억지로 맘에 들지 않은 일들을 받아들이는 녀석. 네 살이었던 지난주 보다, 조금 더 성장한 다섯 살 인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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