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둔형 최작가 May 11. 2021

새로운 공간. 집이 되어야 하는 시점

2021. 연습#3.(210510)_그림.시선

  '집을 빼 달라는' 주인의 말은 꽤나 냉담했다. 아니 담담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의 말투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문장에서, 미안함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물론 현실이 되어버린 생존의 위협을 나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분노했고, 두려웠으며, 한편으론 내 보금자리 하나 지킬 수 없다는 무력함에 허무했다.


  꾸역꾸역 나와 아내와 아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할 시점이었다. 영롱하게 회색빛이 감도는, 유독 길었던 털을 가진 고양이가 나타난 게 그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나의 시간관념이 집을 빼줘야 하는 시간에 맞춰졌기에 요즘은 하루하루를 기억하기보단 부동산에 들려 전세나 월세로 나온 집들의 입주 가능 날짜에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서 오늘이 3월 2일이면, 오늘부터 3개월 후 입주 가능한 집. 이제 3개월 남았다.라고 생각하는 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날짜의 계산법이다. 어쨌든 고양이가 우리 집 베란다에 나타난 건 내가 처음으로 부동산에서 매물을 확인한 날 즈음이었다.     


  ‘희한하다. 여긴 22층인데. 어떻게 고양이가 우리 집 베란다에 들어왔을까’     


  집주인의 변덕 같은. 아니 어쩌면 내가 이 집을 빌려 살기 시작한 처음부터 주인은 결심한 듯했다. 그 정도로 결연했고, 단호했다. 집을 빼 달라니. 계약한 기간은 일 년이나 가까이 남았지만, 자신이 들어와서 살아야 하니. 내가 나가야 한다고 했다. 억울했다. 서러웠고, 암담했다. 주인은 ‘최대한 빨리’라는 기한을 줬고, 보답으로 이사비용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법이 그러니까. 내 보금자리를 내주고,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야만 한다.


  난 뭔가에 홀린 듯, 퇴근길에 차를 돌려 부동산에 들렸다. 중개인은 요즘 매물이 없다고 했다. 작년에 지금 집을 구할 때도 똑같이 들었던 멘트다.      



  “요즘은 정말 매물이 없어요. 집 값이 너무 올라 버렸거든, 앞으로도 여기 지역은 호재가 많아 지하철도 새로 들어오고, 옆에 대기업 공장도 크게 들어온다 했다고, 매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얼마가 되었든 간에 하루도 안돼서 다 사버린다니까. 게다가 지금 그 돈으론 이곳에서 집 구하기 어려워, 어쨌든 전화번호랑 이름이랑 입주 희망 날짜나 적어놓고 가봐요. 나오진 않을 텐데 그래도 모르니까”     



  내가 가진 돈에 맞는 집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연락 달라는 간절한 부탁과 함께, 이사업체 전화번호가 프린트된 메모지에 이름과 전화번호, ‘언제든지 이사 가능’이라는 말이 잘 보이도록 밑줄을 서너 번이나 꾹꾹 눌러 적었다. 부동산을 나설 때도 꾸벅 인사하며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집을 구할 수 있을까.      

  고양이가 있었다. 그것도 베란다에. 그것도 22층이나 되는 우리 집에. 처음에는 아내를 의심했다. ‘나 몰래 고양이를 입양해 왔구나’하고. 고양이라면 깔끔하고, 주인을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언뜻 들은 기억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이 집에 별다른 추억도 없는데 뭐. 잘했구나. 하고 스스로 억지를 폈다. 그러니까 별로 마음이 언짢지도, 낯선 고양이에 대한 적개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양이가 원래 저렇게 얌전한가’


  영롱한 회색빛이 흐르는 긴 갈기를 가진 고양이었다. 기척조차 내지 않아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배고픈가’ 했다. 퇴근하고 부동산에 다녀와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귀가하긴 했지만, 아직은 초저녁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런데 아내와 아기는 방에서 잠들었고, 난 불 꺼진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서 낯선 고양이를 쳐다보며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유, 맥주, 먹다 남은 치킨. 작년에 이사를 축하한다며 선물 받은 적당히 오목하면서, 적당히 낮은 그릇을 꺼내 우유를 절반 정도 따랐다. 왼손으로 조심스레 베란다 문을 밀어놓고, 고양이 멀찌감치 에 그릇을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문을 밀어 닫고, 고양이가 우유를 핥짝거리길 기대하며, 소파에 앉아서 치킨 몇 조각과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 경계할 법도 한데, 안정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혀를 내미는 모습이 제법 능숙했다. ‘누가 키우던 고양이인가’  


  나는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거주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 왜 그는 날 내쫓으려 할까. 내가 이 집에서 나간다면, 주인은 행복해할까. 저 고양이는 어디서 왔을까. 정말 아내가 입양했을까. 이미 꽤나 커버린 고양이 같은데. 난 정말 나가야 하는 걸까. 오늘 점심에 먹었던 김치찌개가 정말 짰던 거 같네. 같은 두서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엉켰다. 맥주캔이 가벼워졌을 때 가족이 잠들어 있는 방에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는 방향의 불을 켰고, 피로가 찌든 때처럼 묻어있는 옷들을 벗어 걸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고양이는 우유를 할짝였다.



  아침은 혼잡하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기도, 양치하고 어제의 옷을 또다시 입어야 하는 순간도 힘겹다. 출근도 회사에서 나누는 아침 인사도 너무 바쁘고 힘겹다. 혼란 속에서 공허한 여유가 스칠 때마다 나의 다음 집과 고양이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나면 사랑이라 하던데, 나는 다음부터 살게 될 집과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가. 역시나 오늘 아침도 어제처럼 혼잡하다.     


  부동산에선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나는 왜 나의 보금자리를 떠나야 할까. 거짓말 같은 현실을 믿기 어려웠고, 화나 났다가,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심각한 무력감 곧바로 빠진다. 물론 마지막은 제발 연락해 달라는 간절함을 중개인에게 간곡히 전하면서 한 번의 사이클이 끝난다. 유명한 심리학자가 말했던 ‘분노의 5단계’가 이런 거구나. 몇 번의 사이클이 지났지만, 첫 번째 중개인으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집주인은 벌써 서너 번이나 더 재촉했다. 불안하고, 외롭다.


  집주인에게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의 당연함이 나에게까지 당위성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이해할 수 있겠다는 정도다. 분명히 처음에 집을 빼 달라는 이야길 들었을 때, 난 이해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진짜 이해한 건 아니다. 이해가 배려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고양이에게, 나가라고 할 수 없었다. 입양하는 과정에서 고양이는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었겠지. 내 처지랑 비슷하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신의 삶이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 와중에 고양이는 베란다를. 나는 소파를 택했다. 그뿐이다.      


  고양이는 내가 준 우유를 며칠은 핥짝거리더니, 이젠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어둑한 소파에 기대서 사료를 주문한다. 어떤 사료가 좋을지 모른다. 많이 팔린 순으로 내림차순 하고, 가장 그럴듯한 포장지에 담긴 5kg짜리 사료를 골랐다. ‘좋아해야 할 텐데’. 여전히 고양이는 어떤 기척도 내지 않는다. ‘강아지가 아니니까’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런데 쟨 어쩌다 여기로 왔을까. 여전히 의문이다.


  나의 집을 ‘구매’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 꼭 사야 한다는 말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에게 집은 그저 공간이었고, 소파였다. 고양이에겐 베란다고. 아내와 아들에겐 방이었다. 돈을 불리고,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포대자루가 아니란 뜻이다.     


  며칠 뒤에 부동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때 말했던 전세 있잖아요. 여기 좀 허름하긴 한데 급하게 전세로 나왔어. 어떻게 한 번 볼래요?     

  “네, 그럼 언제쯤 가면 될까요?”     

  “뭐 오래 끌 거 있나, 이따가 한 4시에 여기로 오세요”     


  지금은 3시다. 그것도 회사에서.      


  “네. 그럼 4시에 뵐게요”     



  불쾌함을 느꼈지만, 부랴부랴 휴가를 쓰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이 또한 배려다. 중개인과 전세를 매물로 내놓은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빨리 집을 비워달라는 주인의 독촉에 대한 배려다. 부동산에는 ‘내 돈으론 이 동네에서 절대 전세를 못 구해’라고 했던, 나에게 한 시간 전에 연락해서 급하게 연락을 잡은 중개인이 홀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아까 통화했던 사람이에요”     

  “아 그 집 구하시는 분. 내가 진짜 어렵게 구했어요. 미리 말하지만 집은 좀 허름해. 그런데 이 동네에서 이만한 가격에 집 구할 수 없다는 거 알죠? 내가 정말 특별히 힘쓴 거야. 일단 바로 가시죠”     



  예의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허름한 차림으로 남의 집을 방문했다. 미안했다. 중개인은 자신의 집처럼 구조를 설명했다. 낡은 샹들리에 전등을 보면서 30년 전에는 다 고급으로 지어진 곳이라 했다.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도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리곤 중개인은 이후 과정에 대해 설명했는데, 마음에 들지도, 방금 봤던 집의 구조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에, 알겠다고, 고맙다고 했다.      



  “내가 이 동네에서만 30년 부동산 했어, 나 아니었음 저런 집 구하지도 못해, 내가 아들 같아서 특별히 노력한 거야.”     

  “아, 네. 감사합니다.”     



  난 곧 마흔인데. 졸지에 5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중개인의 아들이 되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구했다는 찜찜함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옮길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컸다. 두 달 뒤, 첫 번째 토요일에 이사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계약금을 넣었다. 지금의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이사 날짜를 알렸다. 그는 ‘다행’이라고 했다.


  덕분에 이른 귀가를 했다. 집에 오기 전에 고양이 사료와 물을 동시에 넣을 수 있는 플라스틱 그릇도 샀고, 아들이랑 아내가 좋아하는 치킨 한 마리도 포장해 갔다. 집 앞에는 사료가 도착해 있었다.


  아내, 아들. 그리고 기척 없는 고양이는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이윽고 치킨 냄새를 맡은 아들은 날 바라볼 때 보다 환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선물이야’라고 치킨을 건네고, 고양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전용 밥그릇에 사료도, 물도 가득하게 채워놨다. 새로운 밥그릇을 어색해하는 고양이를 빤히 쳐다봤다. 이런 날 아내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뭐해? 어서 와서 치킨 먹어”     

  “아. 여기 고양이한테 밥 좀 주고 갈게”     

  “무슨 소리야. 우리 집에 고양이가 어디 있어. 맞다. 얼마 전에 우리 선물 받은 그릇에 우유 넣어서 내놓은 게 당신이었어?, 난 애가 장난친 줄 알았네”     

  “그때도 고양이한테 밥을 주려고 그랬지, 저기 있잖아 고양이. 회색의 긴 갈기 달린 고양이 말이야, 맨날 우유만 주기가 미안해서 사료도 시키고, 오늘은 그릇도 사 왔지”     

  “어이쿠. 이양반 장난은.”     

  “아냐, 여기...”     

  “어디? 고양이 키우고 싶어서 시위하는 거야? 어서 치킨부터 먹어요, 내가 생각해 볼게”     



  아내의 말에 의아해하며 뒤돌아 봤을 때, 고양이는 없었다. 잠시 숨었나. 아니. 고양이를 집에 들인 장본인이 아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니. 옆집이나 윗집, 아랫집 고양이가 집을 잘 못 찾았을까. 아니지. 여긴 22층이니까 문 닫힌 베란다에 고양이가 들어갈 수도 없을 노릇이다. 황당했지만, 어딘가 잠시 숨었을 고양이를 생각하며, 닭고기를 뜯었다.


  집을 구했다 말했고, 아내는 다행이라 했다. 이어서 ‘우리 가족’이 함께 할 공간을 찾아서 기쁘다 말했다. 나도 기뻤다. 나의 소파가 아내와 아들의 방이, 고양이의 베란다가 있는 집이어서 다행이었다. 나와 아내와 아들과 고양이에게 집이란. 소파와 방과 베란다라는 공간이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하나로 엮인 공간이다. 그래서 아내와 아들, 고양이 없이는 어떤 공간도 집이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안도감을 느꼈다.     



  고양이는 잘도 숨어 있지만.

이전 03화 '빈곤' 없는 세상을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